[수필]한입에 다 먹기엔 꽤 큰 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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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디저트] 5회


딸기모찌 
by 무구



   

  혼자서 일본을 여행한 지 2주쯤 되었을 때였다. 나는 도쿄에서 삿포로로 이동했고, 도심 중앙에서 살짝 북쪽에 위치한 기숙사형 게스트하우스에 숙박을 잡았다. 겨울의 삿포로는 눈의 도시 그 자체였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동네를 걷기만 해도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게스트하우스의 1층에는 진짜 나무 장작을 태워 공기를 데우는 난로가 있었다. 숙박객들은 2층의 로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해나를 만난 건 그곳에서였다.

 

  오후에 약속이 있던 날, 나는 느긋하게 일어나 지난밤 편의점에서 사 왔던 몇 가지 음식들로 대충 끼니를 때울 계획으로 2층에 갔다. 그곳에 공용 냉장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을 적어둔 비닐봉지를 꺼내 공동 소파에 가 앉았다. 내 무릎보다 낮은 테이블에 비닐봉지를 내려두고, 주먹밥과 컵라면으로 간단히 먹을 식사를 준비했다. 해나는 내가 식사하는 중에 나와서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아주 짧게 자른 스타일의 얇은 금발, 오뚝한 코, 푸른색의 동공. 해나는 평소에 내가 접하던 인종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건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옅은 청색을 띤 점프수트를 입고 있었다. 밖은 겨울이지만 난로로 데워둔 공기가 더웠는지, 양팔을 걷어붙이고 있었는데, 한쪽 팔뚝엔 크고 선명한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

 

  내가 빠르고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나니 해나는 내게 말을 붙였다.

  -너 혼자 여행 왔니?

  -응, 너도?

  -응, 나도.

  잠깐의 어색한 정적이 일었다. 그러다가 곧 내게도 몇 가지 물어볼 말이 생겼다.

  -일본은 처음이야?

  -응, 너는?

  -나는 한국에서 왔고, 이번이... 다섯 번째네.

  꽤 여러 번 일본에 왔다는 내 말에 해나는 흥미가 생겼는지 내게 더 적극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직업이 뭔지, 일본에서 가본 도시는 어디 어디인지, 앞으로의 여행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나도 덩달아 이것저것 굳이 궁금하지 않았던 질문들을 했다. 직업이 뭔지, 이번 여행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오늘 오후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해나는 캐나다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최근 이혼을 했고, 삿포로에는 스노보드를 타러 왔다. 앞으로의 구체적인 여행 계획은 없지만, 상황에 따라 여행을 계속할 예정이었다. 오늘 오후에는 그냥 동네를 돌아다녀 볼 생각이었다.

 

  예상치 못한 개인사를 너무 깊게 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당황스러웠다. 더 무언갈 물어보는 게 실례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짧은 영어 실력도 점점 떨어져 가고 있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비닐봉지에 담아두고 나 혼자 두 알 다 먹으려던 딸기모찌를 꺼내 들었다.

  -너도 하나 먹을래?

  내심 거절하기를 바랐지만... 해나는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분홍색 모찌를 선택했고, 나는 나머지 하얀색 모찌를 먹었다. 얇은 떡 피 안에 달곰한 앙금과 새콤달콤한 딸기 한 알이 탐스럽게 들어있었다. 한입에 다 먹기엔 꽤 큰 크기였다.

  -이 집이 딸기모찌 맛집이래.

  -그래? 여기 근처에 있는 이시다 커피 혹시 가봤어?

  그는 딸기모찌를 먹은 것에 대한 보답이었는지, 본인이 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발견한 카페 하나를 내게 소개했다. 드립커피와 디저트가 맛있는 곳인데, 카페 분위기도 무척 멋있다며 내게 강력히 추천했다.

  딸기모찌가 입 속으로 사라지고 나니, 할 말도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오후의 약속을 핑계 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나도 손에 들고 있던 뜨개질 거리를 들썩 내보이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해버 나이스 데이.

  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해버 나이스 데이.

 

  그다음 날과 다음다음 날에도 혹시 소파에 해나가 나와 있다면 몇 마디 더 말을 걸어 볼까 싶어 2층 소파 근처를 서성였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그가 내게 추천했던 카페에 갔다. 카페는 소개대로 커피도 맛있고 디저트도 훌륭하고, 공간도 무척이나 고즈넉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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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명디저트
연재 슬로건달콤 쌉싸름한
연재 소개밥보다 디저트를 더 좋아합니다. 근데 가끔은 내가 정말 이 맛을 좋아하는지 아님 이 음식에 얽힌 분위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진짜 제 이야기인지 아님 만들어낸 이야기인지는 크게 상관없어요. 때론 맛보다 다른게 더 중요한 순간이 있듯이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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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무구
작가소개작가이자 예술가, 창작자로 오래오래 살아남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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