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마주 보고 앉아 맛보는 한 끼는 그 어떤 명약보다 효과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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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음마
[집순이의 방 탈출] 6회


맞보고 맛보고   
by 백유주




  몇 년째 장바구니 단골손님은 양배추. 역류성 식도염과의 오랜 동거로 생긴 습관적 구매다. 주된 증상은 목구멍에 무언가 걸려있는 듯한 이물감인데, 만성이 되다 보니 목에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 어떤지 되려 생각이 나질 않는다. 역류성 식도염에 좋다는 음식을 챙겨 먹고 좋지 않다는 음식은 피하고, 각종 병원을 순회하며 검사도 받고 다양한 종류의 약도 먹어보고, 건강기능식품에도 손을 뻗어보았으나 차도가 없었다. 수면, 스트레스, 운동 같은 다른 조건들도 최상의 상태로 만들 수 있다면 씻은 듯 나을지도 모르지만, 역류성 식도염은 많은 현대인의 절친한 친구 아니겠냐며 나 또한 내 옆자리를 순순히 내주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뜻밖의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가 하나 있는데 그건 ‘함께 먹기’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을 때는 위에 좋다는 무언가를 따로 챙겨 먹지도 않고, 위를 괴롭게 할 수 있다는 무언가를 가리지도 않는다. 꽤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들도 먹게 되고, 평소보다 과식하면서 평소만큼 충분히 꼭꼭 씹어먹지 못하기도 한다. 예민한 위 녀석이 정한 규칙을 거하게 어기고 테러를 저지르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도 의외로 순순히 봐줄 때가 많다. 이물감이나 속쓰림이 말끔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불편함을 덜 느끼거나 증상을 덜 의식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걸 ‘기분 탓’이라고 하는 걸까.

  물론 이 ‘함께 먹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함께 먹는 ‘누군가’가 내가 좋아하고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 위 녀석은 어쩌면 음식을 가리는 게 아니고 사람을 가리는 걸까. 나랑 단둘이 밥 먹는 걸 싫어하는 걸까. 내가 유난스럽게 따지고 가려가며 대령해 드린 식사에는 그렇게 까탈스럽게 반응하고 성질을 부렸으면서. 내 속이지만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릴 적 배탈이 났을 때 화장실에서 울고 있으면, 엄마가 곁에 쪼그리고 앉아 배를 문질러주며 ‘엄마 손은 약손, 땡땡이 배는 똥배’ 노래를 불러줬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통증이 사그라들곤 했다. 배앓이를 낫게 하는 건 따뜻한 온도의 마사지뿐만이 아니라 엄마의 다정한 노랫소리와 포근한 눈빛이다. 나를 편안하게 하고 안심시켜 주는 것들. 가까운 사람과의 식사도 그런 것이겠지. 

  마주 보고 앉아 맛보는 한 끼는 그 어떤 명약보다 효과가 좋다.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면서 같이 맛있어하고 같이 맛없어하고, 잔뜩 부른 배를 부여잡고 긴 한숨 끝에 ‘디저트로 빙수?’를 외치는, 그야말로 뱃속도 마음속도 꽉 차는 그런 시간. 까칠한 위장도 눈치껏 눈 감아 주는 게 분명하다.

  함께 맛있게 즐겁게 먹으면 0칼로리, 맞다.





연재 정보
연재명집순이의 방 탈출
연재 슬로건다시 걸음마
연재 소개지독한 집순이가 도돌이표를 탈출하고자 꺼내든 작은 용기입니다.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바깥을 흘깃거리는 모습을 지켜봐 주세요.
하고 싶은 말말을 걸어볼게요. 같이 걸어볼까요?
작가 정보
필명백유주
작가소개지구본 모양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아요. 몇 번의 세계 일주로 튼튼한 목발이 되죠. 목발을 짚고 두리번두리번 세상을 짚어보고 있어요.
작가의 말이불을 개면 날이 갤지도 몰라요.
추가 정보
인스타그램@ioo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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