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저 방문을 굳게 닫는 일만이 내게 허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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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line)에서 떨어져요.
[안과 밖 혹은 그 아래] 5회


라일락 가지 
by 오순



  엄마가 방문을 열었다. 공기의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 여자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면 탁하고 뭔가 좋지 않은 기류가 나를 에워싼다. 예고는 없다. 내 방, 문을 함부로 열어젖히며 들어오는 이 여자를 막을 방법이 내겐 없다. 이 상황이면 나는 여지없이 무방비 상태가 된다. 내 몸 구석구석을 마구 할퀴듯 비누칠해대던 엄마의 손아귀에 얇은 허벅지를 잡힌 채 작은 성기를 달랑거리며 욕실 바닥에 서 있던 어린아이가 되고 만다.

  엄마는 좀 들떠 보였다. 화가 난 상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하는데 날카롭고 높은 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넌 술 마시고 절대 운전하지 마.”

  신경질적이고 히스테릭한 목소리는 내 귀의 감각기관을 외려 무디게 만든다. 그 앙칼진 목소리는 일 미터씩 조금씩 멀어져 문밖으로 달아날 것이다. 그사이 나는 표정을 찾을 수 없는 토르소가 된다. 팔다리는 잘려 나간 듯 마비되고 머리는 달려 있어도 무용한 것이고 만다.

  “만취라던데…, 다들 출근하는 시간에 … 새벽까지 술 처먹고 집에 가던 길이었데. …전기 충전소를 들이받았다니 뭐라니, 그런 몹쓸 인간은 ….”

  그 커다란 입이 열리면 좀처럼 닫히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을 때도 그런 일은 극히 드물다. 시시때때로 뭔가를 입 안에 넣고 있기 때문이다. 수시로 허기를 느끼는 그녀의 뱃속은 내가 들어앉을 만큼 큼지막할지 모른다는 상상을 한 적도 있다. 입으로 음식을 씹으면서 눈은 언제나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영상을 보고 있다. 책을 통해 뭔가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못한다. ‘뉴스를 봐야 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아야지.’ 화장실에 들어가려다 거실에서 뉴스를 보고 있는 두 눈과 마주칠 때면 엄마는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하곤 했다. 요즘 언론이 떠드는 뉴스라는 게 모두 엄마가 끝내 먹지 못해 남긴 햄버거빵 조각 같은 쓰레기라는 사실을 그녀는 영영 모를 것이다. 엄마는 24시간을 주방이 딸린 거실에서 생활한다. 한쪽 모퉁이에 매트리스가 깔린 거실에는 매트리스가 마주 보는 자리에 42인치 티비가 놓여있고 엄마가 집에 있는 시간에는 언제나 뉴스 채널에서 잘 꾸민 아나운서가 가십거리를 쏟아내고 있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하지 않으려는 엄마의 이런 노력이 애처롭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세상이라! 엄마의 세상은 뉴스 안에서 떠들어대는 세상과는 거리가 멀다. 공동 공간인 거실이 명백한 엄마의 세상이다. 거실에 깔린 1인용 매트리스에서 자는 엄마는 정작 엄마의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 아빠는 24평 아파트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안방을 혼자 쓰는 복부 비만의 하숙생과 다름없고 고3인 동생은 새벽이나 밤늦게 현관으로 드나드는 찬바람 같은 존재다. 엄마의 유일한 상대는 나뿐이다. 하지만 엄마는 나와 결코 연결되지 못한다. 엄마는 어쩌면 2평 남짓한 방안에 틀어박혀 사는 나보다 더한 외톨이인지 모른다. 더군다나 엄마는 자신이 외톨이란 사실을 꿈에서조차 생각해 본 적 없을 것이다. 엄마가 철저히 외톨인 데에는 기질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그녀에게 문이 달린 그녀만의 방이 없다는 사실과 연관이 있다. 오롯이 그녀의 공간이라고 할 만한 공간은 매일 밤 그녀가 지친 몸을 눕히는 1인용 매트리스 한 장이 전부다. 몸을 뒤척이며 늘어진 파자마 바지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가려운 곳을 긁는 일조차 모두에게 포착될 가능성에 놓여있다. 하다못해 커튼이나 파티션조차 없는 무경계가 엄마에게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는지 모른다. 비밀을 간직할 수 없는 사람에게 모두는 냉혹하기 마련이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상대가 그녀를 알고 싶지 않을 경우는 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엄마에게 문이 달린 그녀만의 방이 있어 오롯이 자신만의 무엇을 간직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그녀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을 것이다.

  “술 처먹고 운전대 잡는 인간들은 다 잡아넣어야 해.”

  읽고 있던 필립 로스의 『울분』을 덮었다. ‘살갗이 벗겨진 몸 같은 혀’ 올리비아의 혀는 마커스를 쌀 뻔하게 했다. 나는 윗입술을 살짝 깨물고 시선은 아래로 향하고 고개를 약간 주억거린다. 함부로 방문을 열고 들어와 쉴 새 없이 혀를 날름거리는 저 여자의 혀는 올리비아의 그것과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을까.

  “넌 그러면 안 돼!”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게 이롭기도 하거니와 뭉개버린 문장들이 끊겼다 들렸다 제대로 입력되지 않는다.

  “음주운전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너도 알지? 고속도로에서 추돌 사고 나봐, 다른 사람 인생도 망치는 거야.”

  ‘난 면허도 없잖아….’ 나와 무관한 일을 줄곧 떠들어대는 그 얼굴의 미간에는 짧고 굵은 세로 주름이 강하게 잡혔다가 펴지고 동시에 커다란 입은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한다. 입 안에 음식물이 없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니다. 입 안에 아무것도 없다손 치더라도 그녀가 가진 어떤 탁월함으로 방안에는 뭔가 차곡차곡 나쁜 것이 적재되고 그 밀도가 높아진다.

  ‘나가!’

  이 말이 내 입 밖으로 나오는 때를 상상한다. 동생이 엄마에게 하는 것처럼. 그러나 내 혀는 입 안에서 잠잠하다 못해 단단하게 굳어 있다. 동생은 엄마에게 무례할 만큼 당당하다. 엄마의 잔소리에 단호하고 반대로 엄마는 그런 동생에게 절절맨다. 나는 결코 동생이 될 수 없으니 억지로 딴 세상 속으로 나를 몰아넣는다. 그 사실을 엄마는 좀처럼 눈치 채지 못한다. 이건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쌓아온 연기력 때문인데 그렇더라도 한순간 엄마가 뜬금없이 질문을 던져오면 상황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너 듣고 있니?”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엄마가 던진 질문을 다시 주워 담기 위해 무기력하기만 하던 내 청력을 끌어올려 보지만 화가 난 눈은 이미 분노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얘가, 너, 설마 음주 운전이 얼마나 나쁜 짓인지 모르는 거야? 말해 봐!”

  엄마의 말이 귀속을 파고들지만, 나의 뇌 회로는 어딘가 막혀 있고 이미 하얀 백지가 돼버려 아무 생각을 할 수 없다. 이 무례하고 가여운 여자를 밀치고 방 밖으로 나갈 수만 있다면 그도 아니면 머리를 찧어서라도 벽을 부수고 이 상황으로부터 달아날 수만 있다면…. ‘난 할 말이 없다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하지만 이 여자가 윽박지르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여자는 왜 여태 모르는가. 무려 25년 동안이나 하루가 멀다고 나를 닦달하고서도 도대체 왜 모르는가. 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없는 이 여자의 끔찍한 무지를 나는 죽여 버리고 싶다.

  “너는 왜 자기 생각이란 게 없니?”

  내 머릿속은 이 여자의 입을 통해 뿜어져 나온 나쁜 공기로 가득 찬다. 벽에 머리통을 짓이기지 않더라도 그보다 더한 통증에 숨을 쉴 수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딱정벌레가 내 머리통을 강한 턱으로 잡아채 통째로 씹어 대는 것 같다. 나의 이런 고통은 점점 더 극에 치달아 급기야 머리카락 아래로 붉은 액체가 터져 나온다. 붉은 액체가 얼굴 아래로 흘러내린다. 내 두 눈에서도 넘쳐흐른다. 다 나쁜 공기 때문이다. 그 몹쓸 것이 내 혈관을 타고 흘러서 온몸을 돌아다니다 더는 갈 데가 없어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이 또한 내가 어쩔 수 없다. 엄마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이성을 잃고 내 한쪽 뺨을 세게 후려친다. 피를 보면 이성을 잃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엄마가 그런 종류의 인간인 것이다.

  “왜 우니? 내가 뭐라고 했다고 우는 거야? 너는 왜 이렇게 나약하니? 너는 왜 맨날, 도대체 왜, 나를 이렇게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거니?”

  엄마는 마침내 거칠게 몸을 돌려 내 방을 나간다. 나쁜 공기가 여자의 목덜미를 붙잡고 따라나선다. 내 몸은 여전히 단단히 굳어 있다. 일어나야 한다. 문을 닫아야 한다. 저 방문을 굳게 닫는 일만이 내게 허락된 것이다.



Branch of Lilacs (Henri Matisse,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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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명안과 밖 혹은 그 아래
연재 슬로건그 선(line)에서 떨어져요.
연재 소개들여다보려고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불안이며 슬픔이며 드러내지 못한 욕망까지. 영영 그 안을 헤매는 길밖에 도리가 없다 해도 말이죠.
하고 싶은 말어떤 색깔을 좋아하세요? 저는 블루를 좋아합니다. 
작가 정보
필명오순
작가소개손목에 선인장과 달을 새겨 넣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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