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다만 직시할 뿐. 슬픔과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조금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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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해 생각하며
[How to live in this world] 5회


비참함과 함께 살아가는 법  
by 김슐




웹진의 연재를 한참이나 쉬었지만, 이상하리만큼 바빴다.

주머니시의 새 작품을 준비했고, 몇 개의 외주와 몇 번의 면접, 사람들을 만나고, 미래를 준비하고 (어떻게?), 간혹 친구들을 만나고, 운동을 하고, 밥을 챙겨 먹고, 데이트를 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어머니에게 전화하고, 집을 치우고, 아프고, 병원을 가고, 몇 개의 작은 성공과 몇 개의 큰 실패, 그리고 포기를 지내고 나니 달력을 두 번이나 넘겨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날은 잠을 자다가 누가 나를 보고 우는 꿈을 꾸었다. 자다 깬 눈에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지만, 떨어지는 눈물을 보며 '아이고 뭐가 저렇게 서러워서 나를 보고 우나.' 하다가 자꾸 눈물이 얼굴을 때려서 …

 

어? 근데 왜 진짜 얼굴에 물이 떨어지지?


하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니 머리맡 옆 창가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사실 비가 새는 일이 놀랍지는 않았다. 벌써 2년째 살고 있는 낡은 오피스텔은 비가 미친 듯이 내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새곤 했으니까. 그래서 항상 비가 떨어지는 곳에 조그마한 컵이랑 휴지를 포개두었는데, 문제는 항상 떨어지던 곳이 아니라 그 옆에도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잠에서 덜 깬 채로 나지막한 욕지거리를 뱉으며 수건을 가져와 떨어진 물과 젖은 이불을 닦아냈다. 이불을 걷어내어 빨랫감에 쌓아두고, 새 이불을 꺼내어 침대에 깔아둘 때쯤

창밖으로 하염없이 쏟아지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리고 있었다.

비가 많이 오면 괴롭다. 사라지지 않는 습기와 비가 새는 집도 괴롭지만, 사그라드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들이 괴롭다.

아니나 다를까, 올여름에도 사람이 죽었다. 비가 많이 오는 것도 인재, 사람이 죽은 것도 인재다. 이렇게까지 쏟아지게 만든 잘못과, 이렇게 쏟아질 줄 알았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잘못인 탓이다. 무지하고 무방비한 마음이 또 무고한 이들을 앗아갔다. 우리의 손으로 빚은 재난이 계속되는 기분은 비참함으로 치환된다.

 

비참함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뒤숭숭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8월의 뙤약볕에 괴롭힘만 받다가 서울로 올라온 청소년들을 오가며 마주칠 때에도 입이 쓰리지만, 전국 여기저기 비극적 소식이 쏟아진다. 내 또래의 교사와 군인이 어처구니 없이 세상을 떠난 것을 볼 때는 목에 핏대가 솟을 만큼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데 하물며 칼부림이라니. 부끄러운 말이지만 채 실감도 나지 않았다. 

방검복이라도 사야 할 것 같다는 친구의 문자에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다른 친구가 보낸 대전 소재의 한 고등학교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뉴스에 잠시 몸이 얼어붙었다.  

모교였다. 본가와 걸어서 5분 거리의 모교 이야기가 뉴스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가족 친구들이 걱정되어 전화를 돌렸다.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편협하고 이기적인가. 이름 모를 비극에 무용한 안타까움만 토해내다가, 내 피부에 와 닿고 나서야 이 미친 일이 언제든 나에게도 혀를 내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인제야 이 모든 비극이 내 주변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실감이 든다.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렇게까지 치달아야 알게 된 스스로가 조금 미웠다.

미친 범죄를 저지르거나 계획을 세운, 혹은 그에 편승하여 혼란을 조장한 이들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고, 어떤 서사도 옹호도 필요 없다는 데에 동의하지만, 한 편으로는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범죄와 비극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어딘가가 짓눌려 있지는 않았나 하는 고민이 든다. 막혔던 둑의 틈 사이로 터져 나오는 물처럼 이 사회에 어떤 복합적인 감정과 문제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기분이다.

저마다 일련의 혼란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다르겠지만, 내게 샘솟는 감정의 기저에는 비참함이 깔려있다. 인간만이 인간을 해한다는 대전제하에서 공기 중의 습기처럼 피부에 달라붙는 이 비참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토로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비참함에 대한 한탄만 늘어놓고 마치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당신들에게 예의가 아님을 안다. 연재의 주제처럼 비참함을 딛고 살아가는 법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놓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당신들도 짐작했듯 세상 모든 문제에 완벽한 정답이란 없다.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은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야 한다는 것.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야 한다. 연신 뇌리를 스치는 참사에 대한 슬픔을, 인간을 향한 인간의 악의에 대한 두려움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이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직시할 뿐. 슬픔과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조금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갈 뿐. 그래서 마침내 내가, 우리가, 이 사회가 해야 할 일을 찾아갈 뿐.

나는 여전히 바쁘고 부족한 글이나마 연재를 다시 시작한 통에 더욱 바빠졌다. 내 삶은 여전히 20대 중반의 혼란함 한가운데에 놓여있고, 세상은 그에 못지않게 혼란함이 이어지는 중이다. 버릇처럼 비참함을 느끼고, 때론 방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버겁기도 하다. 그렇지만 내일도 살아간다. 서리처럼 피부에 달라붙은 비참함을 인정하고 하루 중 백에 하나만큼은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 방향을 고민하면서 말이다.

 

8월도 벌써 반이 넘게 지나가고 있다. 또 눈을 감았다 뜨면 서늘한 바람이 어깨를 스칠 것이다. 쏟아지는 비극에 지쳐있는 당신에게 이 글이 다음 가을을 맞이하는 데에 아주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기를 간곡히 바라고 또 바란다. 






연재 정보
연재명How to live in this world
연재 슬로건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해 생각하며
연재 소개
살아남다. 라는 말은 꽤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단순히 내 육신의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 를 생각하고 나면 살아남는다는 말이 가지는 해석의 여지는 끝없이 넓어지는 것처럼, 다양한 순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감정의 파도 속이던, 우리가 피부로 목격하는 진짜 위협 속이던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어떤 세상에 살고 계신가요
작가 정보
필명김슐
작가소개요동치는 지구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사람들을 위해 일합니다.
무엇이던 쓰고, 그보다 더 많이 지우곤 합니다.
작가의 말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하자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
추가 정보
인스타그램@sep.twenty.f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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