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꼭 모든 것이 근거가 있어야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조회수 230

 

엑스트라인 모두에게 남기는 편지
[여섯 다리 법칙] 4회


4화 🦋 🦋 🦋 🦋 [네 마리, 희주]
by #F0F8FF



이전화 바로가기
1화🦋 한 마리, 광연
2화🦋 🦋 두 마리, 수환
3화🦋 🦋 🦋  세 마리, 다연


  개판이다.

  그냥, 개판이라는 말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자살해서 죽었다는 동기를 화두에 던져놓고 떠들어대는 꼴이 우습다. 하나는 어디서 듣고 온 말로 선동하고 앉아있고, 하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애를 지켜주겠다고 나댄다. 나머지는…. 나머지도 다 똑같다. 이곳에 진실은 없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냐고? 글쎄. 꼭 모든 것이 근거가 있어야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같은 과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등록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로 입학과 동시에 휴학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이름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고, 학원에서는 꽤 높은 페이로 나를 채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라도 학교에 다니며 등록금을 버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었을 것 같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1년을 꼬박 일하자 두 학기 학비 정도는 낼 수 있을 만큼의 돈이 모였고, 그제야 뒤늦게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1년이나 늦게 시작한 내가 과 내에 속할 만한 집단은 없었다. 아마 동기들은 나라는 동기가 있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대학이란 곳이 그렇다. 내가 신경 쓰지 않으면 아무도 날 신경 써주지 않는다. 그걸 일찍 알았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때 학교에 다녔을 것이다.


  “어, 저희 같은 과, 동기네요?”


  비인기 일반교양의 팀플에서 처음으로 과 동기를 만났다. 그게 세빈이었다. 세빈은 나와 친해지고 싶다며 전화번호를 물어봤고, 몇 번이고 먼저 연락해 만나자고 말했다. 나와는 다르게 여유 있고 쾌할한 세빈은 내 형편을 눈치챈 뒤로 항상 먼저 밥값을 계산했다. 그러면서도 자기 나름대로 부담은 주지 않겠다는 듯 커피는 내가 얻어먹지 뭐, 라고 말하는 게 참 세빈다웠다.


  -


  “희주야. 나, 너무 힘들다. 죽고 싶다…….”


  어느 날 세빈이 술에 취해 이런 말을 남겼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곧바로 이유를 물었지만 세빈은 자기가 실언을 했다면서 말을 돌릴 뿐이었다. 본인도 아는 게 분명했다. 나는 저런 말을 들을 사정이 아니라는 것을. 죽고 싶다는 얘기를 꺼내는 세빈이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단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인가. 이후로도 세빈은 종종 힘든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세빈이 그저 일상적인 고민을 털어놓았다면 이렇게 짜증 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세빈이 허무맹랑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죽고 싶다고 말한다는 데에 있었다. 그것도 술만 들어가면. 맨정신에는 처음 내가 알던 세빈의 모습 그대로인데, 술만 들어가면 자꾸만 뱃속에 나비가 산다는 헛소리를 해댔다.


  “야, 그거 다 망상이야, 망상.”

  “그런가아…….”


  망상인가…. 세빈이 말꼬리를 흐리며 잔을 채웠다. 가진 것도 많은 애가 왜 저런 헛소리에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너라면, 절대 그렇게 살진 않을 텐데. 형편이 좋은 애들은 고비도 형편에 맞게 오는 모양이다. 당장 생계가 불안해지지 않을 정도의 고비라니. 술을 털어 넣고 그냥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뱃속에 나비가 산다는 말을 네 번 정도 들었을 때부터 세빈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분명 처음에는 가끔 만나던 관계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꽤나 자주 세빈을 만나게 되었다.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세빈이 내게 털어놓는 이야기는 많아졌고, 나는 점점 더 그런 세빈이 아니꼬워졌다. 세빈이 나비 때문에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나는 더 불행해져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출발선이 나보다 한참 앞인 사람마저 저렇게 죽고 싶다면, 아마 나는 이미 죽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멀리했다. 내 인생이 실패한 인생 같다고 생각하기 싫었고, 남의 속도 모르는 세빈이 껄끄러웠다. 그래서 난 세빈에게 비밀을 만들었다.


  익명: 너네 진짜 재수 없는 애 있으면 어떻게 해?

  내 친구 중에 맨날 배부른 소리 하는 애 있거든. 내가 자기보다 한참 흙수저인 거 다 알면서 일부러 별것도 아닌 고민으로 사람 속 살살 긁음. 존나 재수 없고 같잖아서 화남. 그딴 것도 고민이라고 말하는 건가 싶어서. 심지어 걔는 인싸에 친구도 많고 나는 그냥 아싸인데 자꾸 죽고 싶다니까 어이없음. 이거 보고 있으려나. 근데 걔는 나 좋아해서 내가 이런 거 쓴 줄도 모를 듯 ㅋㅋ

  ㄴ익명 1: 와 글쓴이 인성 쓰레기네

   ㄴ익명 2: 근데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님. 배부른 소리 하는 애들 다 공감 능력 떨어져 보임 ㅇㅇ


  세빈과 만난 날이면 집에 돌아와 한 시간씩 온라인 커뮤니티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예전엔 이런 곳에 글 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막상 직접 써보니 실체 없는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는 걸 알게되었다. 내 이야기 속에서 세빈은 세상에서 제일 이상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뭐, 사실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망상 같은 걸로 괴로워하는 게, 이상한 사람 맞지 않나? 한참 다른 글을 구경하던 때 댓글이 달렸다는 알람이 울렸다.


  ㄴ익명 3: 응 주작~ 인싸가 너같이 음침한 아싸랑 왜 친구 해줌 ㅋㅋ


  나도 그게 궁금했다. 왜 세빈같은 사람이 나랑 친구를 해줄까. 평소 궁금했지만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인데, 댓글이 시동을 걸어 이 생각만이 머리속을 장악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출 가능한 결론은 단 하나였다. 동정심. 부끄러움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우린 동등한 친구 관계가 아니었다. 누가 봐도 내가 을인 이 관계에서 세빈은 날 고민을 털어놓을 창구 정도로 생각할 게 분명했다. 세빈과의 관계에서 휘둘리고 있는 건 나였다. 나는 점점 더 세빈과 만나기 싫어졌다. 괴롭다며 우는 모습도 내겐 특별해 보이고 싶은 쇼 정도로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래서 진짜 세빈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심지어 에프킬라를 입에 물고 자살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허탈해지기도 했다. 결국 뱃속의 나비 때문에 죽었다니. 너는 내가 다시 태어나야만 가질 수 있는 것들을 갖고서도 그런 실체 없는 망상 때문에 죽은 건가. 참 우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세빈은 죽은 뒤에도 인기가 많았다. 커뮤니티는 세빈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추모부터 추측, 비난, 심지어는 자취촌에서 죽어 민폐라는 말까지 올라왔다. 뭐든 간에 세빈은 유명인이었다. 도피처마저 빼앗긴 나는 갈 곳을 잃었다. 가장 솔직해질 수 있던 공간마저도 세빈이 차지했다. 내가 죽었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려나. 아닐 것 같았다. 이건 세빈이라, 세빈의 죽음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


  익명: 안녕하세요, ‘에프킬라’라고 불리는 고인의 가족입니다.

      ㄴ익명 24: ㅋㅋㅋ가족이라는 증거 있음?

       ㄴ익명 25: 이런 글에까지 증거 타령 하고 싶냐? 틀린 말도 없는데.


  괜히 아니꼬운 마음에 익명 25를 신고했다. 정의로운 척 하는 게 보기 싫었다. 자기도 가면 뒤에 숨어 말할 뿐이면서. 한편으로는 세빈이 부러웠다. 죽어서까지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편을 들어주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죽음을 택하다니.


  세빈의 장례식에서 처음으로 과 동기들을 만났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는데도,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세빈이 소개 한번 해주지 않던 동기들. 생각해보니 억울했다. 내가 1년 늦게 학교에 다닌 걸 왜 후회하는지 뻔히 알면서 자리 한번 만들어주지 않았다니. 세빈에겐 맘만 먹으면 쉬운 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세빈은 이렇게 많은 친구를 두고서도 나비 타령을 하다 죽었다. 내게는 세빈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의 절반 정도만큼의 지인도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공지용 단톡방에 세빈을 추억하기 위한 자리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건 기회라고 생각했다. 동기들과 친해질 기회. 나는 세빈과 꽤나 친했으니까, 얘기를 하다 보면 친해질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세빈과 친했다는 말과는 다르게 다들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나비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나 하나라니. 이쯤 되니 세빈이 나비 때문에 죽은 게 맞나 싶은 의심이 들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세빈이 나비를 죽이기 위해 에프킬라를 사용했다고 확신했던 내가 바보 같아졌다. 세빈이 그럴 리가 있나. 정말 멍청이도 아니고. 애초에 에프킬라를 물고 죽은 건 사실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생각해보니까 아무도 확실하게 세빈이 어떻게 죽었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커뮤니티에 추측만이 떠돌고 있을 뿐이지.


  “아까부터 너네, 말이 좀 심하다?”


  아까부터 세빈이를 변호하던 애가 이번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까지 말을 꺼냈다.


  “야, 이다연. 너 뭔데 계속 딴지냐?”

  “죽은 사람 두고 그렇게 말하면 좋아? 그리고, 아까부터 왜 자꾸 세빈이 욕하는데.”


  과대가 발끈하며 맞받아쳤으나 이다연이라는 애는 멈추지 않았다. 뭐지. 세빈과 사귀기라도 했나? 하지만 내가 알기론 세빈에게 애인은 없었다. 이다연은 계속해서 세빈이 얼마나 착하고 좋은 애였는지 토로했다. 무슨 천사가 강림이라도 했던 것처럼.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다연의 말에서는 세빈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너, 우리보다 세빈이랑 친했긴 해?”


  과대의 비꼬는 말에 이다연이 조용해졌다. 우물쭈물거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역시나 그렇게 친하진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다연은 이내 친하지 않으면 편 들 수도 없는 거냐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애들 왜 그렇게 맹신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난장판이 된 술자리를 가만 바라보다 그냥 자리를 떴다. 저기서 나비 어쩌고 한 마디만 보탰다간 저 눈 돌아간 다연이라는 애가 가만 안 있을 기세였다. 세빈이 죽은 이유를 안다는 것의 메리트가 사라진 지금, 술자리에 더 있을 필요는 없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세빈이 보낸 편지가 생각난다. 세빈이 죽기 전에 우편으로 받았는데, 귀찮아서 열어보지 않았다. 이제 와서 읽어보기는 좀 찝찝하고…. 그냥 버릴까 싶다. 죽은 사람의 물건은 태워서 버려야 하던가. 지하철에서 내려 라이터를 사 가야겠다. 편지가 은근 두껍던데 화재경보기가 울리진 않을까, 잠시 고민해본다.


[다음에 계속]






연재 정보
연재명여섯 다리 법칙
연재 슬로건엑스트라인 모두에게 남기는 편지
연재 소개우리는 얼마나 가깝고도 멀까?

-

옆 건물 남자가 에프킬라를 입에 물고 죽었단다. 이유가 뭔지 궁금하지만, 알 방법이 없었다.
친구가 옆 건물 남자와 같은 과 동기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여섯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라고? 대학가에선 4명이면 충분하다.

각기 다른 네 개의 시선을 통해, 가깝고도 먼 그의 죽음에 다가간다.
하고 싶은 말누군가의 인생에서 엑스트라였던 A의 삶, 배경이었던 B의 삶, 소품이었던 C의 삶을 위하여 !
작가 정보
필명#F0F8FF
작가소개쓰고 그리고 찍으며 삽니다. 
작가의 말뛰어들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추가 정보
인스타그램@alice_lives_in_blue

 




아래 버튼은 후원 버튼으로,
운영비를 제외한 모든 후원금*은

웹진에 참여하신 작가분들께 전달됩니다.


 

*후원금 기준액은 1,000원입니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