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와하하하하. 이해할 수 없는 웃음이 떠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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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인 모두에게 남기는 편지
[여섯 다리 법칙] 3회


3화 🦋 🦋 🦋  [세 마리, 다연]
by #F0F8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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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한 마리, 광연
2화🦋 🦋 두 마리, 수환


보통 시험 기간도 아닌 때에 대학 도서관에 늦게까지 남아있는 1학년은 거의 없다. 그것도 입학한 직후인 1학기에는 더더욱. 하지만 난 꼭 1등이 하고 싶었고, 사실 공부 말고는 할 것도 없었기에 보통 매일 도서관에서 남은 하루를 보내곤 했다. 

여느 날과 같이 도서관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던 여름 직전의 밤에, 세빈을 처음 만났다. 주로 반팔을 입지만 겉옷 없이는 아직 쌀쌀한 밤에. 축제가 한창이었고, 학생들은 모두 공연이나 주점을 즐기고 있었다. 반짝이는 불빛이 캠퍼스 곳곳에 가득했다. 그곳에 내 자리는 없었지만.


“다연아! 다연이 맞지?”


세빈이 말을 걸었다. 오늘 같은 날 쟤는 왜 혼자 다닐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던 것 같다. 세빈은 완전한 ‘아웃사이더’인 나도 알고 있을 정도로 과 내에서 유명인사니까. 더군다나 축젯날 가장 혼자 있지 않을 것 같은 동기 1위인 세빈이 날 알고 있다는 건 상당히 의외였다. 


“너 나 알아?”

“우리 동기잖아. 당연히 알고 있지!”


싸가지 없다고 느껴질 법한 내 말에도 세빈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왔다. 얘는 속도 없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약간의 죄책감이 나를 눌러왔다. 아무 악의 없이 인사해준 애한테 무슨 말을 했나 싶었다. 

세빈은 나를 어느 주점으로 데려갔다. 학기 초 이후로 술자리는 처음이었다. 개강총회니 파티니 하는 자리에 두어 번 가보았으나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그 뒤로는 이따금 가자는 요청이 있어도 온갖 핑계를 대며 자리를 피했다. 그런데 왜 그날만큼은 세빈을 따라갔는지 모르겠다. 아마 축제의 열기에 잠긴 캠퍼스에 동화된 모양이었다. 

주점에서 뭘 하고 놀았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계속 날 챙겨주던 세빈만이 기억에 남았다. 분명 먼저 자리에 있던 일행들이 날 불편해했는데도, 세빈은 분위기를 자신의 것으로 이끌어가며 나를 챙겨주기까지 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에 그날만큼은 나도 즐겁게 술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세빈은 막차 시간에 맞춰 먼저 일어나는 내가 머쓱하지 않게 함께 나와주기까지 했다. 일행들이 붙잡았는데도, ‘오늘만큼은 꼭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함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알고 보니 같은 방향이었던 우리는 술기운을 빌려 참 다양한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향했다. 세빈은 날 만나기 전부터 조금 취해있었고,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해 금방 취했다. 어떤 대화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세빈이 건넨 말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한다. 


“너, 좋은 애인 것 같아.”


아마 나는 습관적으로 나를 비하했던 것 같다. 거기에 세빈은 내가 좋은 애인 것 같다는 대답을 돌려줬고, 그 말은 갑작스럽게 위로가 되어 나를 감쌌다. 사실 사람을 멀리하고 혼자인 내가 싫었다. 긴장하면 무심코 툭툭 말을 던져내는 나도 싫었고, 사람을 알기도 전에 먼저 재단하고 보는 나도 싫었으며, 1등을 위해서 노는 것 대신 공부를 택했다고 자기 위로하는 나도 싫었다. 하다못해 나를 싫어하는 나도 싫은데, 세빈은 내가 좋은 애인 것 같다는 말을 건넨 것이다. 

세빈과 대화한 후 나는 크고 작은 모임에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미 사이가 멀어진 동기들과 친해지기는 어려웠지만, 다양한 동아리나 활동에 가입하며 조금씩 나와 맞는 사람들을 찾아갔다. 사람들을 만날수록 내 세계는 넓어졌고, 이건 전부 세빈 덕분이었다.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단단하면서도, 자신의 밝음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 비록 축젯날 이후로 세빈과 다시 어울리는 일은 없었지만 마음속 가장 좋은 자리엔 언제나 세빈이 있었다. 용기가 없어 연락해보진 못해도, 잘살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세빈은 세빈이니까.

그러니 세빈이 자살했단 소식을 들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


익명: 안녕하세요, ‘에프킬라’라고 불리는 고인의 가족입니다.

    ㄴ익명 24: ㅋㅋㅋ가족이라는 증거 있음?

 ㄴ익명 25: 이런 글에까지 증거 타령 하고 싶냐? 틀린 말도 없는데.


 오늘만 해도 10개째. 다들 왜 이렇게 세빈의 죽음에 관심이 많은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아직도 세빈이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냥 지금까지처럼 나와 접점이 없는 곳에서 잘 살고 있을 것만 같은데. 지금이라도 연락하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답장이 올 것만 같았다. 졸업하기 전에는 꼭 한번 연락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아무 소용 없는 다짐이었다. 

11번째 댓글을 달려던 때, 신고 누적으로 계정이 정지됐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황당했다. 옳은 말을 많이 했을 뿐인데 계정 정지라니. 세빈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일마저 거부당한 기분이었다. 


 세빈의 장례식에서, 나는 내가 누구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저 자리를 채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멀뚱히 서 있다가 향을 하나 피우고 절한 뒤 나왔을 뿐이다. 친구라기에도 아니라기에도 애매한 관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익명으로 세빈을 감싸는 일 뿐이었다. 이젠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됐지만. 공허함에 딱 하나 같이 찍은 사진을 찾아보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술자리에서 찍은 단체 사진. 세빈은 이제 살아있지 않다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생생한 웃음을 띄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던 세빈의 얼굴 위로 알림창이 떴다. 동기들이 함께 있는 공지용 단톡방에 세빈을 추모하기 위해 모이자는 말이 오가고 있었다. 그 말을 보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세빈과의 이야기를 공유할 사람이 필요했다. 이 형용하기 어려운 상실감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함께하고 싶었다. 장소는 세빈이 좋아했다던 술집으로 정해졌다. 세빈에게 한 번이라도 연락해봤더라면, 세빈은 나를 그 곳에 데려갔을까.


“너 그거 못 들었어? 걔, 사고 쳐서 휴학한 거래.”

“사고? 무슨 사고?”

“몰라? 나도 어디서 들은 거라. 근데 확실하대. 내 친구 동기가 직접 겪은 일이랬어.”

“그럼 그거 때문에 자살한 거야?”

“내가 듣기로는 빚이 많았다던데.”


근거 없는 추측이 떠돌았다. 자리에 있는 누구도 세빈의 근황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황당했다. 그렇게 좋은 애를, 친구라는 너네가 근황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심지어 그의 죽음을 모임을 위한 핑계로 사용하고 있었다. 만약 이런 자리인 줄 미리 알았더라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세빈이 너라면 여기서 그만 얘기하자고 말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는 자살이 아니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답답한 마음에 술만 여러 잔 들이마시고 있을 때였다. 세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던 중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가 나왔다. 세빈이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이곳저곳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조용해진 가운데 두세명씩 세빈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기적인 마음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세빈의 죄라고는 그저 모두의 고민을 들어준 것 뿐일텐데, 죽은 사람을 추모하자고 모인 자리에서 오히려 욕을 하고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세빈이는 절대 그럴만한 애가 아니야.”


알코올은 없던 용기도 만들어내는 게 분명하다. 평소 같았으면 한마디도 못 했을 내가, 정적을 가르고 의견을 내놓았다. 여러 쌍의 눈이 나를 향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일엔 익숙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질 못하고 머리속을 맴돌았다. 


“절대, 절대 그럴 애가 아니라고, 세빈이는… 절대…”

“그럼 우리가 다 거짓말 하고 있다는 거야?”


겨우 입 밖으로 더듬거리며 몇 마디 꺼내 보았지만, 누군가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금방 말을 멈추고 말았다. 세빈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데. 친하다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니들보다는 적어도. 갑작스레 눈물이 나와 고개를 묻었다. 세빈이 보고 싶었고, 세빈에게 미안했다. 익명으로도, 실명으로도 세빈의 편을 들어주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조용한 분위기에 깜빡 졸다가 일어났을 땐, 다들 다시 시끄럽게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술기운에 멍하니 듣고 있자니 뭔가 이상했다.


“세빈이 걔, 무슨 귀신 들린 것처럼 막 집에서 뛰어다니고 그랬대.”

“야, 니가 그걸 어떻게 아냐?”

“아 취했냐? 말했잖아, 황세빈 옆집 사람이 나 아는 사람이라고.”

“진짜면 대박이네. 귀신들려서 죽은 거 아님? 애초에 에프킬라를 입에 물고 있는 것부터 존나 이상하잖아.”

“기믹 아냐? 죽음까지 기믹.”


와하하하하. 이해할 수 없는 웃음이 떠다녔다. 어떻게 누군가의 죽음을, 그것도 동기의 죽음을 유머로 소비할 수 있지. 신나서 떠들고 있는 얼굴을 쳐다봤다. 자기도 어디선가 들은 게 다인 근거 없는 말을 늘어놓고 있는 얼굴. 그곳에 세빈의 편은 없었고, 내가 세빈을 변호해야 했다. 마지막 기회다. 말이 생각을 거치지 않고 튀어나왔다. 격한 표현에 놀란 것인지 모두의 얼굴이 나를 향했다. 아까처럼 도망칠 수는 없었다. 나한테 좋은 사람인 것 같다며 웃어주던 세빈의 얼굴을 떠올렸다. 네가 없는 이제야 보은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사라지던 용기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까부터 너네, 말이 좀 심하다?”


[다음에 계속]






연재 정보
연재명여섯 다리 법칙
연재 슬로건엑스트라인 모두에게 남기는 편지
연재 소개우리는 얼마나 가깝고도 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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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건물 남자가 에프킬라를 입에 물고 죽었단다. 이유가 뭔지 궁금하지만, 알 방법이 없었다.
친구가 옆 건물 남자와 같은 과 동기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여섯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라고? 대학가에선 4명이면 충분하다.

각기 다른 네 개의 시선을 통해, 가깝고도 먼 그의 죽음에 다가간다.
하고 싶은 말누군가의 인생에서 엑스트라였던 A의 삶, 배경이었던 B의 삶, 소품이었던 C의 삶을 위하여 !
작가 정보
필명#F0F8FF
작가소개쓰고 그리고 찍으며 삽니다. 
작가의 말뛰어들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추가 정보
인스타그램@alice_lives_in_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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