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바라만 보고 있어도 뿌듯하고, 자꾸만 쓰고 싶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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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기록해온 것들에 대한 새로운 기록
[기록의 기록] 3회


3화. 그래서 제가 뭘 기록했냐면요_시 노트 
by 사사이안



  나는 어쩌면 활자 중독인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어릴 적, 아장아장 걸으면서부터 집에 있는 책들을 의미도 모른 채 읽어나갔고(심지어 프랑스어로 된 요리책마저도!) 2월, 새 교과서를 받으면 첫 등교를 하기도 전에 교과서를 다 읽어봐야 직성이 풀리던 아이였다. 그래서였을까, 고등학교 시절 거의 매달 갈아치워야 했던 국어 문제집이 너무 재미있었다. 어떤 계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청소년 소설만 주야장천 읽다가 시의 재미에 빠져 문제집에 나오는 시를 재미로(!) 읽기 시작했다. '이 문제집을 얼른 다 풀고 새 문제집을 사면 새로운 작품을 읽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이 나의 국어 점수를 향상하게 했을지도. 하지만 그렇게 문제용으로 읽고 버려지는 작품들이 아까워 평소 책의 구절을 필사한 것처럼 나만의 '시 노트'를 만들어 필사하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바라만 보고 있어도 뿌듯하고, 자꾸만 쓰고 싶어지는 노트를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덕에 타이밍도 완벽했다. 처음에는 시와 잠언, 명언을 구분하지 않고 쓰기 시작했지만, 점차 내가 좋아하는 시 작품들을 모아놓은 '나만의 시 큐레이션 노트'가 되었다. 시 필사를 함으로써 나의 시 쓰기 능력이 유의미하게 올랐거나 시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되는 이벤트는 없었다. 단지 나만의 작은 취미이자 즐거움이었고 삶이 힘들 때, 길을 잃을 때면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며 시의 여백에서 의자를 놓고 쉴 뿐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시에 관심을 가지고, 시 쓰기까지 이어져 독립출판까지 하게 된 걸 보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다양한 경험을 하며 노트 하나를 꽉 채우고 든 생각은 '이것을 자료화할 수 없을까?'였다. 깨알같이 옮겨 쓴 작품들은 250개가 넘어갔고, 검색되지 않는다는 아날로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갖가지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 보았다. IT나 컴퓨터 관련 지식이 깊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내가 아는 것 안에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방법을 탐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하는 조건을 완벽히 충족시키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은 다소 어려움이 있어, 타협을 본 방법은 검색 기능이 있는 메모 앱에 작품 하나하나마다 타이핑을 쳐서 보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더 많은 공부를 하여 더 나은 방법을 고안해 보려 한다.

  흔히들 기록하면 과거의 나를 알게 되고 미래의 나를 기대하게 되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기록의 순기능으로 동의하는 바이지만, 또 다른 순기능은 나의 기록을 변해가는 시대에 맞추어 보관하기 위해 더 많은 공부를 하게 하고 세상을 더 넓게 보게 한다는 것이다.







연재 정보
연재명기록의 기록
연재 슬로건10년 넘게 기록해온 것들에 대한 새로운 기록 
연재 소개'기록 인간'으로 살아오게 된 시간들에 대하여, 결국 '쓰는 것' 까지 도달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시 씁니다.
하고 싶은 말저의 기록이 당신의 삶에 닿아 새로운 기록으로 쓰여지는 기적이 이루어진다면 좋겠습니다.
작가 정보
필명사사이안
작가소개독립출판 시집 『다시 오지 않을 밤과 바람』을 썼습니다.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고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천천히, 기쁘게, 씁니다.
추가 정보
인스타그램@sasa_ian
블로그https://blog.naver.com/qlfn8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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