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우리는 데이터들의 시체 위에 또다른 시체를 매일 쌓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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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공간의 무한한 확장과 변이, 그리고 자유로움.
[내가 사랑하는 전시 공간의 공기를 소개합니다] 3회

<내추럴 레플리카>, 김희수아트센터 
by 진경




  <내추럴 레플리카>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와 수림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주관하여, 과학자와 예술가가 팀을 이뤄 만들어낸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이다.


  -전시 감상 조각 노트-

  1. 인간과 기계는 대척점에 놓이는가? 진화생물학자 등 과학자들은 인간도 DNA나 세포 단위로 보면 기계적인 시스템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기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죽음’이라는 개념은 이 둘을 구분하는 가장 큰 척도이다.

  생각해보면 현대의 인공지능(초지능 인공지능이 아닌 경우)이나 가상 공간의 디지털 캐릭터들은 인간과 기계 그 사이에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디지털 자아들을 ‘죽음’이라는 기준으로 인간, 또는 기계로부터 구분할 수 있을까? 그리고 디지털 자아들이 죽는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민찬욱X임화섭은 이에 대한 생각을 인공지능들끼리 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풀어낸다. 작품에서는 디지털 자아의 죽음은 데이터의 삭제를 넘어서, 사용자가 더 이상 찾지 않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데이터가 아무리 존재하더라도, 오류가 생겨 기능을 상실하거나 대체할 다른 디지털 자아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해당 디지털 자아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 인간의 고독사와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디지털 자아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미 수많은 데이터들이 그렇게 죽고 있지 않은가. 유투브, 트위터 등 디지털 플랫폼이나 SNS에서 더 이상 검색되지 않는 정보들은 죽어 있는 것이다. 현대의 트렌드는 굉장히 빨리 변하고, 데이터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축적된다. 심지어 틱톡 등 숏폼 컨텐츠에서 트렌드가 아닌 영상을 찾아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리고 저장공간이 한계에 도달하면 아무도 찾지 않는 데이터들은 삭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데이터들의 시체 위에 또다른 시체를 매일 쌓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2. 인간의 죽음과 철학적 의미는 많이 다르지만, 기계도 마냥 죽음을 초월한 존재라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실험실에 있는 장비들은 유지 및 보수를 해주지 않으면 어느 순간 문제가 생기고 그 기능을 잃는다. 아무리 그 장비를 동작하게 하는 에너지(전기)가 무한대로 있다고 해도 문제상황을 해결하지 않으면 처음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쨌든 기계도 인간이 만든 것이다.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는 기계를 표현한 정금형 작가님의 작품을 보는 것처럼, 고장난 장비를 보면 가끔 안쓰럽고 불쌍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오랜 시간 작동하면서 특정 부분이 마모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장비에 수명이 있다는 표현도 많이 쓴다. 아예 고장이 난 장비들은 사람의 장기기증처럼 부분부분 해체되어 다른 장비의 부속품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런 기계들은 디지털 자아처럼 특정 목적을 잃고 아무도 찾지 않으면 죽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3. 그렇다면 기능을 다하고 마모되어 폐기된 기계들도 인간이 어떤 목적을 부여하는지에 따라 다시 삶을 되찾을 수 있다. 너무 인간 중심적 사고일까?

  4. 작년에 조해나 작가님의 키네틱 아트 작업을 보며 기계의 생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주 간단한 동작을 반복하고, 그 동작을 벽에 기록하는 기계가 작품이었는데 실제 동작에는 일상의 여러 물리적 요소(중력, 바람 등)가 작용하여 약간씩 균열을 일으켜 서로 다른 궤적을 그렸다. 벽에 그어진 획들에게서 보이는 작품(기계)의 과거와, 동작하는 것이 눈으로 보이는 현재, 마모될 미래까지 모든 시간이 중첩되어 있었다.

  5. 전시 전반의 다양한 ‘복제’품들. 복사지, 사진의 이미지, 머리카락, 3D 프린팅.

  6. 말의 이미지가 있다면 인간은 그것이 애니메이션 캐릭터이던, 말의 사진이던, 실제 말이던 쉽게 말이라는 개념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기계가 이 이미지들의 공통점을 찾아서 말이라고 인식하게 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수많은 데이터들을 학습하고 이미지들 간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구별해내야만 유추해낼 수 있다. 그리고 최근의 인공지능들은 이 단계를 넘어서 같은 카테고리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해내기도 한다.

  조효리X박주연의 작업에서 조효리 작가는 인공지능이 이러한 능력을 학습하는데 데이터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이 공간의 세 축으로 구성되는 것처럼, 학습의 필요한 데이터들은 변수의 갯수나 정보량에 따라 다차원을 가지게 된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정보가 저장되는 행렬의 크기가 커지는 것이다. 조효리 작가는 이러한 차원의 깊이를 평면에 음각/양각을 새기는 방법으로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데이터들이 축적된 피라미드를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이미지 데이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작가의 인터뷰였다. 찰스 다윈이 인간이라는 종의 기원에 대해 생각했듯이, 작가는 최초의 이미지 데이터에 대해서 고민했고 사진의 역사에서 초창기의 가장 중요한 이미지 중의 하나인 ‘마이브리지의 말’(달리는 말의 연속 촬영 사진)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말의 이미지가 음각/양각으로 새겨진 작품의 형태에서 자연스럽게 고대 사회의 동굴 벽화까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복제라는 단어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또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해온 것 같다. 고대 벽화와 사진과, 다시 작가가 작품속에 구현한 말의 이미지는 모두 실제 말의 복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인간에게 내재된 복제에 대한 욕망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으며, 그것이 곧 ‘내추럴 레플리카’라고 말한다. 인공지능 또한 말의 이미지를 인식하기 위해 이런 다양한 복제된 이미지들 속에 공통점을 찾는다. 그리고 데이터가 많을수록 더 많이 학습할 수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생명은 데이터라고 볼 수도 있다. 인간은 복제를 열망하고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과학자와 예술가가 대화하여 만든 작품에는 각 분야의 반짝거리는 통찰력이 담겨있었다. 

  7. 현대 사회에서 인간과 기계는 어떤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할까?



 





연재 정보
연재명내가 사랑하는 전시 공간의 공기를 소개합니다
연재 슬로건생각하는 공간의 무한한 확장과 변이, 그리고 자유로움.
연재 소개작품에서 파생되는 생각은 어디든지 도달할 수 있고 무엇이든 틀리지 않았다. 내가 전시에 빠져드는 경로를 기록하고 공유하기. 
하고 싶은 말
작가 정보
필명진경
작가소개검은색과 흰색 사이 줄다리기를 좋아합니다. 경계에 살며 경계 없는 세상을 그립니다. 가끔 획으로 생긴 틈으로 굴러 떨어지기도 합니다. 
작가의 말0과 1 사이 수많은 숫자들 
추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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