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할머니에겐 오래된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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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디저트] 3회


무화과 
by 무구



  아파트 관리사무소 옆에는 노인정. 노인정 옆에는 무화과나무가 있었다. 할머니는 낮에 놀이터 앞 평상에도 앉아 있다가, 노인정에도 들어갔다가, 건물 앞 벤치에도 앉아 있다가, 그렇게 하릴없이 낮을 보내다가 집에 들어와선 방에 있는 티브이를 보고. 그렇게, 지금 돌이켜보니 그렇게 시간을 먼저 죽이며 지내고 계셨다.


  할머니에겐 오래된 냄새가 났다. 그건 할머니 몸에서만 나는 게 아니고, 할머니 옷에서, 이불에서, 방에서. 할머니 방문 앞에만 서 있어도 냄새가 났다. 나는 그래서 할머니를 싫어했다. 옛날 냄새가 나서. 할머니는 이유도 모른 채 그냥 내 미움을 받아냈다.


  아마도, 끝없는 출산과 혼자만 하는 육아에 지친 엄마의 고단함이 장녀인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나도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할머니에 대한 감정이 정해졌던 것 같다. 아무리 과거를 탐색해 봐도 내가 할머니를 싫어할 만한 직접적인 이유는 특별할 게 없었다. 고작해야 그 옛날 냄새 정도.

  불분명한 이유로 비롯된 미움은 분명한 거절의 행동으로 이어진다.


  할머니가 어디선가 무화과 서너 알을 가지고 와서 내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라고 되묻는 내게, 무화과야. 맛있어, 먹어봐. 라고 했던 할머니. 그 말이 무색하든 말든, 나는 그저 거절했고 할머니는 맨송맨송한 표정으로 날 보다가 본인이 한 알 닦아 먹고 나머지는 식탁에 놔두었다.

  시간이 지나 엄마가 집에 돌아오고 나는 엄마에게 다시 저게 뭐냐고, 먹어도 되는 거냐 물어보았다. 엄마는 무화관데 아파트 단지에서 심어둔 거 허락도 없이 그냥 따먹으면 안 된다고, 먹지 말라고 했다.

  모양도 색도, 표면의 질감도 까슬까슬하니 낯설고 이상한 무화과는 내게 그런 과일. 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절단면에는 우유처럼 하얀 진액이 흐르는 걸 보고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할머니처럼.


  이십여 년이 지나서 어느샌가 내 돈을 주고, 제값 치러 사 먹는 무화과는 이제 없어서 못 먹는,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됐다. 적당히 달콤하고 부드럽고, 톡톡 알맹이가 씹히는 과육은 풍미가 좋다. 너무 진하지도, 그렇다고 아무 특색 없지도 않은 무화과. 여러 개를 한꺼번에 먹으면 배탈이 나서 하루에 두세 개 정도만 적당히 먹고, 남은 건 표면을 잘 닦아 바구니 따위에 담아두고, 다음날, 그리고 그다음 날 맛보게 될 행복을 기약한다.

  뿌듯하고 든든한 그 마음 아래에는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있다.


  경로당 옆 무화과나무에서 딴, 손바닥 하나에 가득 담기는 알이 굵은 무화과를 서너 알 손에 쥐고 집으로 왔을 할머니. 할머니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할머니는 그때 무슨 마음이었을까.


  먼 훗날 다시 할머니를 만나게 될 기회가 내게 주어진다면, 그때는 내가 할머니에게 알 굵은 무화과를 건네주고, 둘이 함께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어.







연재 정보
연재명디저트
연재 슬로건달콤 쌉싸름한
연재 소개밥보다 디저트를 더 좋아합니다. 근데 가끔은 내가 정말 이 맛을 좋아하는지 아님 이 음식에 얽힌 분위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진짜 제 이야기인지 아님 만들어낸 이야기인지는 크게 상관없어요. 때론 맛보다 다른게 더 중요한 순간이 있듯이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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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보
필명무구
작가소개작가이자 예술가, 창작자로 오래오래 살아남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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