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그래서 나는 올챙이 적 생각할 줄 아는 다정한 개구리가 되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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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음마
[집순이의 방 탈출] 2회


다정한 개구리 되기 
by 백유주



  저마다 후회하며 살아간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심각한 것까지.
  - 어제 남은 피자 한 조각을 마저 먹으면 안 됐는데.
  - 늦게까지 놀지 말고 시험공부 미리미리 할걸.
  - 그때 그 인간 말대로 거기 땅을 샀더라면.
  후회는 반성과 자매품이지만 활개를 치게 내버려 두었다간 뒷덜미를 잡히기에 십상이다.


  긴 공백이 무색하게 며칠 전 만난 듯 오랜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순간 주저앉아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가장 큰 이유도 후회 때문이었다.
  - 진작에 정신 차리지.
  - 그동안 뭐 한 거니.
  - 애초에 왜 숨은 거야.
  아주 익숙한 느낌이었다. 지난 시간 동안 나를 도돌이표에 주저앉힌 가장 강력한 적군이었으니까. 일어설 용기를 낸 순간, 바로 어제까지의 내가 너무 후회되는 그 마음. 후회가 피어나면 눈앞의 길이 황폐해진다. 펼쳐진 줄 알았던 길은 순식간에 동그랗게 말리면서 쳇바퀴로 변신하고, 나는 겨우 손에 쥔 작은 해바라기 씨앗을 다시 빼앗긴 초췌한 햄스터가 되어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게 된다.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서커스단 에이스로 손색없을 만큼 지겹게 쳇바퀴를 돌던 감각이 살아있기에. 겨우 물 밖으로 나왔다 싶었는데 또다시 발밑이 뻘밭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재미도 감동도 없고 주인공도 빌런도 오직 나 자신뿐인 막장 모노드라마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될까 봐. 반성의 탈을 쓰고 찾아온 후회는 오늘을 연료로 사용해서 어제로 후진하게 만드는 무서운 녀석. 이 녀석은 도대체 어디서 자꾸 나타나고 왜 이렇게 꼬리가 긴 걸까. 애써 잘라냈다고 생각했는데 또 끈질기게 꼬리가 자라나 뺨을 갈기고 목을 조르는 걸까. 고민하던 나는 생각했다. 올챙이 시절을 헤아려주는 개구리가 되어보면 어떨까.


  뒷다리도 앞다리도 제법 튼튼해졌다고 생각한 개구리는 폴짝폴짝 멀리 뛰어가 뒤를 돌아본다. 자맥질하는 올챙이들을 바라보며 ‘멍청이들아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꾸물거리냐!’ 소리를 지른다. 멀리서는 올챙이들이 어떤 성장통을 겪고 있는지 잘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괴로운 몸부림이 그저 우스꽝스럽고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개구리는 스스로 신분 상승한 줄 알고 얼굴색을 싹 바꾸고는 마치 남 보듯 보며 올챙이를 향해 손가락질한다. 그러다 결국 그들의 분노를 사고 만다. 올챙이 적 무시하다 올챙이의 적이 되어버린 셈. 헐크가 된 올챙이들이 전속력으로 몰려와 끈질기게 어깨에 올라타 매달리고 발목을 붙잡고 늘어진다. 개구리는 얼마 뛰어보지도 못하고 뒷다리도 앞다리도 잡아먹히고는 또 하나의 우울한 올챙이가 되어 괴로운 되새김질을 하면서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지난날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반성하는 것은 전진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면 반성은 자책이 되고 충고는 비난이 된다. 전진이 아닌 정지가 되어버리고 만다. 과거를 반성하면 그것은 나의 양분이 되고 과거를 비난하면 내가 그것의 먹이가 된다.
그때의 나에게 ‘너 왜 그랬니?’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표정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정도의 거리라면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멀찍이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거리에서는 ‘도대체 왜 그랬는데’를 반복하기 쉽다. 그렇게 어제의 내가 어떤 마음과 상황이었는지 오늘의 내가 제대로 이해해주지 않으면 과거는 금세 몸집을 불리고 덮쳐와 ‘후회’라는 이름의 물귀신 작전을 펼치곤 했다. 어제의 나에게 돌팔매질하다가 부메랑처럼 돌아온 바위에 맞아 쓰러진 셈이다.


  그래서 나는 올챙이 적 생각할 줄 아는 다정한 개구리가 되어보기로 했다. 어제의 나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얼굴을 읽을 수 있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 성큼 몸을 기울이면 등짝을 세차게 때렸다가도 따뜻이 쓸어내려 줄 수 있는 거리. 때로는 같이 울고, 손수건을 흔들며 배웅해줄 수 있는 거리. 이런 ‘다정한 개구리’의 거리를 지키면 발 앞에 펼쳐질 나의 거리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의외로 과거의 나에게 응원 받으며 폴짝폴짝 온 거리를 활보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도 때도 없는 되새김질이 나는 여전히 익숙하고 동시에 무섭다. 지난날들의 나는 언제고 유령처럼 또다시 나타날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지만, 즐기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멀리서 아른거리는 녀석의 코털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냉큼 놈에게 어깨를 내주고 머리끄덩이까지 잡힐지도 모르니까, 겁먹지 말고, 적당한 거리에서, 다정한 개구리가 되어, 말해보자.
  “또 찾아왔구나. 아직도 그 얘기니. 지겹다. 너도 사실 좀 지겹긴 하지? 자, 여기 티슈. 눈물 닦고 코 풀어. 그래도 그때 그건 아니었어. 그건 네가 좀 심했지. (손사래) 아니, 아니, 절대 너한테 뭐라고 하는 게 아니고, 이해해. 나도 다 알아. 너는 나고 나는 너잖니. 괜찮아. 여기는 내가 잘 수습해볼게. 내가 책임지고 잘해볼 테니까 나한테 맡기고 넌 그만 들어가서 쉬어. 그만하면 됐으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 아니, 제발 좀 들어가서 자! 나 화내는 거 아닌데? 격려해주는 거야, 격려. (슬쩍 등을 떠밀며) 푹 자~ 웬만하면 그냥 쭉 자 쭉~ 개굴개굴!”





연재 정보
연재명집순이의 방 탈출
연재 슬로건다시 걸음마
연재 소개지독한 집순이가 도돌이표를 탈출하고자 꺼내든 작은 용기입니다.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바깥을 흘깃거리는 모습을 지켜봐 주세요.
하고 싶은 말말을 걸어볼게요. 같이 걸어볼까요?
작가 정보
필명백유주
작가소개지구본 모양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아요. 몇 번의 세계 일주로 튼튼한 목발이 되죠. 목발을 짚고 두리번두리번 세상을 짚어보고 있어요.
작가의 말이불을 개면 날이 갤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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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ioo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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