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고래의 곁에서 나는 당연하고 미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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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떤 관계는 그저 우리의 섣부름만을 증명하곤 한다.
[섣부름, 미숙함] 2회


고래의 노래와 어긋난 주파수 - 1. 고래의 노래 
by 소연




 살면서 내 어깨와 쇄골 근처를 이토록 가만히 들여다보기는 처음이다. 거울을 보며 손가락으로 선을 따라 그린다. 오른쪽 쇄골 아래, 잘 드러나지 않는 어깨 즈음. 채 아물지 않은 선이 선명히 만져진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나는 몸에 고래를 새겼다.

 그간 한국에서 만난 고래들은 모두 좁은 수조에 갇혀 있었다. 수조를 빙빙 도는 것이 유일한 일과인 지난한 삶이었다. 답답해 보이던 고래의 눈빛, 정형 행동을 보이는 동물들에 관한 기사, 수족관에서 폐사한 동물들의 소식. 삶이 강제로 전시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경제 논리로 환산된 값을 지불하고 동물을 ‘구경’하러 가는 일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샌디에고 씨월드에 간 건 손에 꼽을 일탈이었다. 고래가 보고 싶어, 그 마음이 모든 생각을 가려 무턱대고 입장권을 끊었다. 저 멀리 압도적인 크기의 수조가 보였다. 자유롭게 헤엄치는 거대한 실루엣이 보였다. 아, 범고래다.

 다채로운 무늬의 범고래들이 우아하게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가끔은 수면 위로 몸을 드러내기도 했다. 물에 젖은 매끈한 몸에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꼬리, 몸의 곳곳을 수놓은 흰색의 반점들, 수면으로 뛰어오르며 물을 뿜는 모습과 범고래 특유의 롭테일링. 한껏 여유롭고 우아한 움직임 앞에서 나는 시시각각 탄성을 내질렀다. 저편에서 헤엄쳐 오는 범고래와 눈이 마주칠 때면 범고래와 나, 오직 둘 뿐인 황홀한 오후였다.

 내 눈에 수조는 광활하게만 보였으나 범고래에게는 충분하지 않은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은 바다를 꿈꾸고 있었다. 꿈꾸는 눈빛은 아름답게 반짝임과 동시에 슬프니까, 나는 그 눈빛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어느 날에는 꿈을 꿨다. 나와 눈을 맞추던 고래가 넓은 바다를 마음껏 유영하는 꿈이었다. 밤하늘에 별이 점멸하고 별빛은 바다의 물결에 닿아 반짝임으로 부서졌다. 고래의 노래가 나를 초대하는 것 같아 바다에 들어가다가 차가운 수온 탓에 금세 발을 빼야 했다. 고래가 유영하는 바다는 너무 깊어서, 인간이 없는 곳에서 고래는 한없이 자유로워 보여서, 그 바다에 내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고래를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바다는 네 것이니까 이 거리에서 지켜보는 것이 너를 사랑하는 나의 방식. 그 아이는 분명 샌디에고에서 만났던 범고래였다. 몸체 오른쪽의 타원형 반점과 꼬리 부근의 길쭉한 반점. 그 무늬를 몇 번이고 눈으로 좇아 그렸으니 틀림없다. 이 꿈은 돈을 지불하고 범고래를 보러 갔던 날의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내 무의식이 만들어낸 꿈이겠지. 그 아이들에게 보내는 닿지 못할 사과였다. 

 수영도 하지 못하면서 누구보다 자주 바다를 그리워했다. 바다에 잠기면 오롯이 적막이다. 세상은 너무 시끄러우니까, 시끄러운 소리의 틈에서 나는 쉽게 불안해지니까 습관처럼 바다를 갈망했다. 오랫동안 바다를 보지 못할 때면 숨을 몰아쉬게 되는 순간이 잦아졌다. 고래는 아가미가 아닌 폐로 호흡하니까 아가미를 가지지 못한 나도 바다에 살 수 있지 않을까, 무의미한 질문을 곁들이며 빛나는 지느러미로 드넓은 바다의 모든 구석을 마음껏 누비는 삶을 동경했다. 자주 물에 몸을 담갔다. 오래도록 물속에 잠겨 있었다.


“얼마 전에 고래 문신을 했어”

 우다영의 소설에서 이 문장을 봤을 때, 고래들의 노래에 대한 아름다운 서술을 읽어 내려가던 그 순간에, 나는 불현듯 몸에 고래를 새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모든 곳에서 고래를 보는 내 시야와 바다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이 좋았다. 바다에 자주 와야지. 고래를 닮은 유연한 삶을 살아야지.

 

 나는 다시 꿈을 꾼다. 쇄골 아래의 고래가 바다를 유영하는 꿈이다. 그 꿈에서 바다는 내게도 견딜만한 온도여서 나는 고래와 나란히 심해를 누빈다. 우리는 꼭 맞는 주파수로 노래한다. 같은 순간에 수면으로 뛰어올라 호흡하고 분기공에서 물을 뿜는다. 악의 없는 롭 테일링이 수면의 파도를 흩뿌릴 때면 나는 고래의 지느러미 근처를 맴돈다. 눈을 감았지만 모든 것이 선명하다. 고래의 노래를 배경음악 삼아 몸을 바다에 내맡긴 채 황홀한 춤을 춘다. 심해의 적막은 두렵지 않다. 고래의 곁에서 나는 당연하고 미약하다. 

 거울 속에서 한 마리의 고래를 본다. 고래는 태어남의 순간부터 몸의 일부였던 것처럼 꼭 맞는 자리에 놓여 있다.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는 고래의 노래가 귓가를 맴돌다 서서히 흩어진다.







연재 정보
연재명섣부름, 미숙함
연재 슬로건가끔 어떤 계절은 그저 우리의 섣부름만을 증명하곤 한다.
연재 소개사랑해 마지않았던, 그렇지만 끝내는 섣부름과 미숙함으로 기억되는 순간을 기록합니다.
미숙함에서 비롯된 슬픔마저도 모두 나의 시간이었기에.
하고 싶은 말당신은 어떤 미숙함의 시간을 지니고 있나요?
작가 정보
필명소연
작가소개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생각들이 활자로 기록되는 순간을 사랑합니다. 
생계를 위해 사랑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기억을 사랑하고 기록을 신뢰합니다. 
추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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