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바삭 쫀득 달콤 고소했던, 나의 첫 마카롱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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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디저트] 1회


마카롱
by 무구




나를 묶어둔 일상으로부터 도망쳐서 몇 개월간 제주에서 머무를 때였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휴대전화도 정리하고, 공중전화와 이메일로만 섬 바깥세상과 소통하던 그때, 육지가 그리울 만하면 인천 집에서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택배 상자가 내 이름 앞으로 왔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붙어있는 테이프를 뜯어내다가도 내용물 위로 덮여있는 상자 날개를 하나둘 들어내다 보면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까 설렘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것으로도 충분한 선물이었다.


박스 안에는 이메일로 내가 미리 가족들에게 부탁한 생필품 외에도 동생들의 자필 편지와 소소한 봉지 과자, 주전부리할 캔디, 젤리, 초콜릿 따위가 들어있었고, 그중에도 단연 눈에 띄는 건 넷째가 직접 만든 과자들이었다.

그때 아직 중학생이었던 넷째는, 홀로 빵 만드는 재미에 눈을 떠서 집에 구비한 지 얼마 안 된 전자레인지 오븐과 인터넷으로 알아본 레시피를 가지고 쿠키나 파운드 케이트 따위를 만들곤 했다. 주기적으로 나에게 배송되었던 상자에는 매번 넷째 표 과자가 함께 배송되곤 했는데, 그날은 처음 보는 것, 마카롱. 그것도 필링은 없이 마카롱 꼬끄*만 잔뜩 비닐 포장지에 담겨 있었다.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마카롱 꼬끄만 잔뜩 보낸 넷째의 사정은 이러했다. 인터넷으로 마카롱이라는 디저트의 존재를 알고 난 뒤, 난생처음으로 아몬드 가루를 부모님께 졸라서 구입했다. 마카롱, 그것도 꼬끄만 일단 만들기는 했는데 따로 먹어본 적도 없고, 만들어본 것도 처음이라 이게 정말 제대로 만들어진 게 맞는지 모르겠단 것이었다. 그래서 맛이 좀 어떤지 봐달라고 잔뜩 꼬끄만 보냈던 것이다.

사실 마카롱 맛을 모르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만 해도 국내엔 마카롱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디저트였고, 나도 제주에 내려오기 전엔 카페 한 번 가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던 대학생이었으니, 마카롱이 무슨 맛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서툴지만 정성을 들인 티가 나는 비닐 포장을 벗겨내고 마카롱 조각을 하나 입에 넣었다. 바삭한 조각을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과 단맛, 그리고 쫀득거리는 식감이 재미났다. 크기가 작으니 금세 입 안에서 사라져 다음 조각을 바로 입에 넣고, 또 넣었다.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으라고 넉넉히 담아준 당부가 무색하게, 사람들에게 나눠준 것보다 나 홀로 먹은 양이 훨씬 많았다. 바삭 쫀득 달콤 고소했던, 나의 첫 마카롱의 맛.

부드러운 크림 필링도, 알록달록한 색감이나 화려한 포장은 없었지만, 중학생 넷째가 인터넷 레시피를 찾아 열심히 만들어냈던, 인천에서 제주까지 물 건너온 마카롱의 맛은, 좋았다.



*프랑스어로 껍질이라는 뜻으로, 겉이 단단하고 매끈한 형태가 알이나 조개의 껍데기와 비슷하여 그렇게 부른다. 보통 대부분의 마카롱은 두 개의 꼬끄 사이에 크림이나 가나슈, 잼 등의 필링을 넣어 만든다.





연재 정보
연재명디저트
연재 슬로건달콤 쌉싸름한
연재 소개밥보다 디저트를 더 좋아합니다. 근데 가끔은 내가 정말 이 맛을 좋아하는지 아님 이 음식에 얽힌 분위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진짜 제 이야기인지 아님 만들어낸 이야기인지는 크게 상관없어요. 때론 맛보다 다른게 더 중요한 순간이 있듯이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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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보
필명무구
작가소개작가이자 예술가, 창작자로 오래오래 살아남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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