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흐르고 있다. 2014년에도, 2022년에도 나와 당신이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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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해 생각하며
[How to live in this world] 1회


참극을 딛고 살아가는 법
by 김슐




  10.29 참사가 일어난 지 다섯 달이 다 되어간다.


  연말에 일이 있어 이태원을 들렀을 때, 역 앞의 차분하고 싸늘한 온도를 기억한다.

  유독 바람이 차가운 날이었다. 하늘에는 눈이 쏟아지고 있었고,

  맞잡고 있던 이의 손은 따듯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역 앞에 놓인 꽃들 사이에 곱게 적힌 이름들을 보고 집에 돌아와

  한참이나 가만히 앉아있었다.

   

  참사가 일어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편지를 썼었다.

  며칠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있다가 처음으로 한 일이었다.

  수취인도 없는, 도망치는 마음으로 눌러 적은 글은 자꾸만 입에 쓴맛을 남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이태원에는 내 친구들이 있었다.

  내 친구들은 살아남았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 새벽 내내 그들이 불렀을 때 함께 하지 않은 나를 원망해야만 했다. 새벽이 다 지나 친구들과 연락이 닿았을 때 잠시나마 안도했던 스스로조차 부끄러웠다.

 

  수치와 통탄으로 가득 채워진 밤에, 나는 또 2014년을 떠올렸다.

  습관처럼 떠오르는 참극마저 죄스럽던 순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흐르고 있다.

  2014년에도, 2022년에도 나와 당신이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편지를 쓰며 누구에게도 이 편지를 쉬이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미안하기도, 너무나 부끄럽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신들에게 편지를 보여주고 싶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조금 더 남은 까닭으로.

 

  -

 

  며칠간 속이 편치 않았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밤낮없이 꽤 오래 잠을 잤어.

  이상하게 도저히 일어나지 못하겠더라고.

 

  한참을 멍한 채로 지내다가 내가 아직도 2014년에 갇혀있다는 생각을 했단다.

 

  한 영화감독이 자크 데리다의 말을 빌려 진정한 애도는 상실된 대상을 떠나지 않는다고, 
  유령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어.

 

  부채가 해결되지 않은 햄릿의 유령이 자꾸 돌아오는 것처럼,

 

  여전히 나나 당신이, 우리가 2014년에 갇힌 까닭도 그 유령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참사는 왜 일어난 것일까.

 

  단순히 슬픔과 분노를 쏟아낼 대상을 찾는 게 아니라,

  우리가 구조적으로 어떤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인지,

  그래서 다음번엔 그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할 것인지,

  우리가 뼈 아픈 참사 뒤에 도대체 무엇을 배운 것인지,

 

  2014년 이후에도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니?

 

  참사가 일어난 후에

  며칠간 뉴스를 보지 않았어. 아니, 보지 못했다고 해도 괜찮을까.

 

  신경정신의학회 의사들의 성명문이 생각이 나서,

  한국에 들뜬 마음으로 놀러왔던 친구들이 함께 놀자고 불렀던 일들이 떠올라서,

  그 자리에 내가 없다는 이유로 몇 시간이나 피를 말리고 후회했던 까닭으로,

  아니 어쩌면 당장 해야 할 일들을 끝마치기 위해서

  잠깐 도망치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엊그제 확인한 뉴스에서는

  토끼 머리띠를 쓴 주동자를 찾는다며 난리를 치고 있더라.

  이처럼 비참한 일이 어디 있을까.

 

  거길 왜 갔느냐고, 놀러 간 거 아니냐며 되지도 않는 훈계를 지껄이는 이들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 모르겠어.

 

 

  오늘은 또 녹취록이 나왔다고, 경찰들이 신고에 늦게 대응한 거라며 소리치는 사람들 앞에서

  경찰청장이 미흡한 대응에 대해 사과한답시고 고개를 숙이고 있더라,

  경찰들은 화가 많이 난 것 같더라고,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면서.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니,

 

  아무런 책임 없는 추모나

  진공 상태에서 거드는 위로의 말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지

  이 비극에 매몰될 수는 없으니까

  우리가 2014년 4월 이후에도 살아있는 것처럼

 

 

  근데 나는 왜 자꾸 친구들을 잃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나면 여전히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을 해.

 

 

  2022년에도, 2014년에도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걸까.

 

  그치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야 하는 거지?

 

 

  턱 밑에 울컥거리는 것을 간혹 삼키면서

  우리가 무언가 배워서 다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헛된 바람이 아니라 그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가면서.

 

  그러므로, 우리가 참극을 딛고 살아갈 수 있는 거라면.

 

 

  -

 

  그렇지만 여전히 미안하게도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만 같다.

 

  그날 쏟아졌던 우려와 신고에도 불구하고 왜 재난을 막지 못한 것인지 알려달라며 사람들이 목놓아 외치고 있지만, 무용한 사과와 의미 없는 보상(그마저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을 대답이라며 내놓았다.

 

  인터넷에서는 놀러 갔다 죽은 이들에게 왜 보상해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생각보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또다시 깊은 좌절을 맛봤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닌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 이들이 더 많다고 생각하면, 계속해서 살아 나갈 자신이 종종 없어지곤 하니까.

 

  아직도 4월이 되면 시간이 종종 멈춘다. 16일에 방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는 것은 이제 오랜 버릇이 되었다. 예전에는 어딘가에 글을 남기는 것도 자제하려고 했었지만, 요즘은 꼭 한마디라도 남긴다. 우리가 여전히 그날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므로, 누군가는 내 글을 보고 잊지 말고 기억하기를 바라는 맘으로.

 

  우리는 10월 29일 다음에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비참한 이야기지만, 나는 돌아오는 10월 29일에도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글의 제목과는 정반대되는 이야기지만, 무책임하게도 나는 여전히 참극을 딛고 살아가는 법에 대해 잘 모른다. 그저 그 이후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만 알 뿐이다.

 

  다만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산 사람은 살아야지.’에서 멈추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자 한다. 그리고 또다시 무책임하게 그 고민을 함께해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참극을 딛고, 그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

  덧. 

  이 글이 올라가기 몇 주 전에 시청역을 들를 일이 있었다. 
  거기에도 여전히 분향소가 차려져 있다는 사실을 그날 알았다.

  바람이 불고 실 가닥 같은 비가 내리던 날이었는데,
  문득 뼈마디가 서늘해졌다. 

  이만큼만 괴로워도 되는 걸까. 고민이 멈추질 않았다.  




연재 정보
연재명How to live in this world
연재 슬로건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해 생각하며
연재 소개
살아남다. 라는 말은 꽤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단순히 내 육신의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 를 생각하고 나면 살아남는다는 말이 가지는 해석의 여지는 끝없이 넓어지는 것처럼, 다양한 순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감정의 파도 속이던, 우리가 피부로 목격하는 진짜 위협 속이던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어떤 세상에 살고 계신가요
작가 정보
필명김슐
작가소개요동치는 지구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사람들을 위해 일합니다.
무엇이던 쓰고, 그보다 더 많이 지우곤 합니다.
작가의 말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하자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
추가 정보
인스타그램@sep.twenty.f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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