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모두를 향한 악의가 퍼드덕거리며 날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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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인 모두에게 남기는 편지
[여섯 다리 법칙] 5회


부록: 나비는 무엇을 먹고 사나
by #F0F8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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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한 마리, 광연
2화🦋 🦋 두 마리, 수환
3화🦋 🦋 🦋  세 마리, 다연
4화🦋🦋🦋🦋 네 마리, 희주



  나는 사람을 만나며 스트레스를 받기보단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쪽에 가까웠다. 누군가 내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면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우월감이 들기도 했다. 사람들은 나를 신뢰했고, 나는 그런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꼈으니 서로 윈윈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을 만나고 집에 오면, 배에서부터 울려퍼지는 퍼드덕거리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소리는 몸 안쪽에서 들려와 귀를 막으면 더 생생하게 들렸다. 믿을 수 없는 얘기지만, 배 속에 나비가 살기 시작했다. 사실 오래전부터 나비가 몸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걔 좀 싸하지 않아?”

  “어?”

  “수환이 말이야, 좀 싸하지 않냐고. 맨날 여자애들 있는 술자리에만 가잖아.”


  항상 시작은 간단하다. 말은 전달되는 과정에서 부풀려지고, 사실인지 아닌지 보단 얼마나 자극적이고 미워할 만한 구실이 되는 지가 우선된다. 사실 수환이 동기들 중 한 명과 사귀는 사이였고, 그래서 자기 여자친구가 있는 술자리에만 빠짐없이 참석한다는 사실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수환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이다연, 좀 이상하잖아. 맨날 과 행사도 안 와, 술자리도 안 와.”


  다연이 모두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데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수환이 꺼내는 말에 나비가 날아올라 퍼덕였다. 파르르 떨리는 날개는 걷잡을 수 없이 큰 바람을 만들어냈다. 이런 바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세빈이? 걔 뭐, 애가 너무 가볍긴 하지”


  꺄르르, 별로 재밌지도 않은 말에 웃음이 쏟아졌다. 아니, 나비가 쏟아졌다. 왜 단 한 번도 저들의 관심이 내게 향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을까. 내가 알던 얼굴들이 아닌 것 같았다. 들어가려던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몸이 안 좋아 못 갈 것 같다는 문자를 간신히 남긴 뒤에야 몸에 힘이 풀렸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

  그 후로 웃는 얼굴이 가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것도, 남의 것도 모두 다. 동시에 그동안 무심했던 자신에게 실망했다. 대상이 내가 되기 전에는 나도 그런 말들에 웃고 떠들었기에, 심지어는 동조하고 침묵해줬기에 화낼 자격을 잃었다.


  “왜, 무슨 일인데.”


  희주를 편하다고 생각해서 인가, 희주와 이야기하다 갑작스레 죽고 싶다는 말을 뱉어버렸다. 실수였다. 아무리 희주가 과에 아는 사람이 없다지만 그래도 같은 과 동기다. 이미 나비가 어떻게 날아가고 전해지는지 알고 있어 도저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이제 사람들과 만나도 즐겁지 않고 억지로 웃고 있는 것 같다고, 희주에게 말하는 순간 모두가 알게 될 것이 분명했다. 더욱이, 희주와는 같은 과인데도 다른 친구들과 한 번도 함께 만난 적이 없다. 희주도 어렴풋이 그 점을 불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긴 했다. 하지만 희주에게까지 나비를 옮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희주라면, 말하지 않아도 나름대로 이해해주리라 믿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비는 내 주위를 감싸고 있을 뿐이었고, 사람들과 멀어지면 나비도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나비는 어느 순간 슬그머니 몸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자리 잡았다.


  -


  “야, 그거 다 망상이야, 망상.”


  배 속에 나비가 있다며 우는 내게 희주는 이런 말을 남기곤 했다. 망상이 아닌데,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다크써클 가득한 희주의 얼굴을 보며 삼켰다. 우울은 전염되니까, 더 얘기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망상 같은 이야기였다. 나비가 뱃속에? 당사자인 나도 믿기지 않는데 그냥 친구일 뿐인 희주가 그렇게 느끼는 건 당연했다. 희주가 학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술잔을 가득 채우며 맞장구쳤다.

  일부러 사람들을 멀리한 결과, 내게는 희주 밖에 남지 않았다. 누구의 나비도 옮겨오지 않는 희주만. 희주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희주에게는 알 수 없는 벽이 쳐져 있는 것 같았다. 그 벽을 넘으려고 할 때마다 나비가 요동쳤다.

  언젠가 희주를 만났던 날, 희주의 핸드폰에서 커뮤니티 알람을 봤다. 미리보기라 자세한 내용을 보진 못했지만, 희주가 커뮤니티에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 평소에 희주는 그런 곳에 글 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희주가 글을 썼다니.

  집에 돌아와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았다. 나비가 가득했다. 모두를 향한 악의가 퍼드덕거리며 날아오르고 있었다. 희주가 이런 글을 썼으리라곤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믿지 않기로 했다. 희주는 그저 정보를 얻기 위해 커뮤니티를 이용했을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내가 아는 희주를 믿기로 다짐했다.


  내가 휴학했을 무렵부터 희주는 연락을 잘 받지 않았다. 답장 중 대부분은 애들 내신 대비 기간이라 바빠, 라는 내용이었다. 고등학교 내신 대비 기간이 어떻게 두 달 내내 있을까 싶었는데도 되묻지 않았다. 대신 편지를 썼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내용의, 네가 있어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한 장, 두 장 쓰던 편지가 6장이 되던 날 희주의 집으로 보냈다. 만나서 전하고 싶었지만 희주가 만나주질 않았다. 이렇게라도 보낼 수 있는 게 어디냐고 애써 합리화했다. 가끔 커뮤니티에 들어가 글을 읽어보며 희주의 그림자를 찾아보려 애썼지만 소용 없는 일이었다. 다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나비를 구분해 낼 방법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 배 속의 나비는 차곡차곡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뱃속에 고치를 틀고 변태하며, 서서히 개체를 늘리고 힘을 키워가며.


-


  결국 어느 날, 나는 나비를 토해낸다. 식도를 거슬러 올라오는 나비의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지는 가루에 식도가 미친 듯이 가렵다. 혀를 지나 이를 피해 입술을 가르고 기어이 날아오르는 나비. 금세 나비 수백 마리가 방안을 가득 채운다. 몸 안에서도, 밖에서도 퍼드덕거리는 소리가 가득하다. 나비의 문양은 수백 쌍의 눈이 되어 날 노려보기 시작한다. 에프킬라를 손에 쥐고 정신없이 뿌려댄다. 작은 방 안이 살충제 향으로 가득 차오른다. 나비는 바닥에 떨어져 파르르 떨다가 움직임을 멈춘다. 이제 끝인가. 긴장이 풀리며 까무룩 잠에 든다.


  몸 안이 간지러운 기분에 잠에서 깼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나비가 몸 안을 갉아 먹고 있다는걸. 아마 살충제 때문에 밖으로 나오지 못한 모양이다. 나비가 식인도 하던가, 잠시 실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날개가 서로 부딪히며 바스라지고 그 부스러기에서 새로운 나비가 태어나고 있다. 보이지 않지만 난 안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계속, 계속 날 속에서부터 갉아먹다가 결국엔 내가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적어도 마지막까지 ‘나’의 형체로 남고 싶다.

  어느덧 눈알까지 타고 올라온 나비에 눈도 뜰 수 없다. 간신히 손을 더듬어 에프킬라를 손에 쥐었다. 점점 껍데기만 남고 있는 내 몸뚱아리가 느껴진다. 마지막 남은 ‘나’를 다잡고 입안에 에프킬라를 꽂는다. 에프킬라가 바닥날 때까지 버튼을 누르고 있자, 드디어 고요가 날 감싼다. 이제 조용히 잘 수 있을까. 점점 의식이 멀어지고 있다. 이제 모두 끝이다.


  퍼드덕, 들리지 말아야 할 소리가 다시 들린다.







연재 정보
연재명여섯 다리 법칙
연재 슬로건엑스트라인 모두에게 남기는 편지
연재 소개우리는 얼마나 가깝고도 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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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건물 남자가 에프킬라를 입에 물고 죽었단다. 이유가 뭔지 궁금하지만, 알 방법이 없었다.
친구가 옆 건물 남자와 같은 과 동기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여섯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라고? 대학가에선 4명이면 충분하다.

각기 다른 네 개의 시선을 통해, 가깝고도 먼 그의 죽음에 다가간다.
하고 싶은 말누군가의 인생에서 엑스트라였던 A의 삶, 배경이었던 B의 삶, 소품이었던 C의 삶을 위하여 !
작가 정보
필명#F0F8FF
작가소개쓰고 그리고 찍으며 삽니다. 
작가의 말뛰어들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추가 정보
인스타그램@alice_lives_in_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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