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우리는 그들이 왜 죽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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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해 생각하며
[How to live in this world] 4회


전과 다른 지구에서 살아남는 법 
by 김슐




또 사람이 죽었다.

몇 백, 몇 천, 몇 만, 몇 십만, 몇 백만명이 죽었다.

우리는 그들이 왜 죽었는지 모른다.


이방인처럼 떠돌던 몇 년 전의 스코틀랜드에서 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 협상을 하고, 수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내는 현장에서 나는 대한민국의 젊은 대표라는 명찰을 달고 여기저기를 들쑤셨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인파들이나, 길을 지나가는 유명인사들을 보다 보면 어쩌다 이런 기회가 내게 왔나 싶어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고 짧은 영어를 더듬거리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노력했다. 내가 찍은 인터뷰와 영상들이 KBS에 방영될 다큐멘터리에 그대로 사용될 것이라고, 캠코더를 건네며 꺼냈던 PD의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저희는 행사장 안에 들어갈 수 없으니 찍으신 영상을 활용할 생각이에요. 그러니 잘 부탁합니다.”

 

KBS라니. 스무 살에 상경해 집에 TV가 없어진 이래로 KBS를 안 본 지 좀 되었다지만, 그래도 전 국민이 안다는 KBS 아니던가. 나는 묘한 책임감과 들뜬 마음으로 캠코더를 잡고 발을 놀렸다.

 

더욱이 행사가 진행됨에 따라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행진을 시작했다. 스코틀랜드의 궂은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이대로는 살 수 없다며, 다른 미래는 가능하다며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사람들 속에서 무언가 벅차오름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영상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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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라, 몇 개의 행사를 치르고 수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영상에 담는 것이 익숙해지자 처음의 어리둥절함은 온데간데없이 물 흐르듯 일들을 이어가던 참이었다. 익숙해진 스스로 약간의 대견함을 느끼며 한 행사장에 포럼을 들으러 갔을 때였다. 당시 포럼의 주제는 내가 한국에서부터 꽤 관심 있던 분야였고, 짧게나마 공부도 했던 터라 졸업 논문으로도 생각하고 있던 주제였던 터라 기대감과 고양감을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포럼의 내용은 꽤 실망스러웠고, 아까운 시간을 부추겨 다음 일정을 위해 일어나던 차에 옆자리에 앉은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포럼 내내 분주히 내용을 받아 적었던 이였다. 포럼이 끝난 후에 무언가 결의에 찬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던 그이에게 나는 무언가 홀린 듯 인터뷰를 제안했다.

 

차드에서 온 사피아. 그이의 나라와 이름이었다.

 

 

약간의 당황과 수줍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그이는,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되었느냐는 형식적인 첫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았다.

 

“우리 민족은 물이 있는 곳을 찾아 오랫동안 떠돌아 왔어…기후변화가 우리의 일상과 문화를 완전히 망가뜨렸고, 우리의 고향을 무너뜨렸지…청년들, 특히 차드의 청년들과 차드를 떠돌고 있는 유목민들에게 발언권을 가져가고자 이 자리에 왔지만…이 자리의 누구도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 않아. 지금 이 순간에도 차드의 사람들은 떠돌아다니고 있어.”

 

쇠로 된 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본 적이 있는가. 속이 텅 빈 쇠기둥 말이다. 속이 빈 쇠기둥에 머리를 부딪치면 머리 안이 그 울림으로만 가득해진다. 마치 바보라도 된 것처럼 우두커니 서서 말이다. 그이의 말을 듣고 있는 나는 쇠기둥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한참이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실은 그이의 말은 내가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매년 2,0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기후변화로 인해 그들의 거주지를 떠나고 있고, 500만 명가량이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날씨로 목숨을 잃는다. 기후변화가 측정 불가능한 요소들과 연계되어 작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헤아리지 못한 수는 더 많을 것이다. 이 자리에 오기 위해 이런 내용을 꼬박 한 해 동안 공부했던 내겐, 그이의 말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일 터였다.

 

그렇지만 내겐 여태까지 읽어봤던 수많은 보고서와 아티클보다, 발표를 위해 정리하고 수정해온 자료보다, 방금까지 들었던 전문가들의 정확하고 냉철한 분석보다, 그이의 단호하고 결의에 찬 말 한마디가 크게 와 닿았다.

 

얼렁뚱땅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잠깐의 정적을 지나 밖으로 나오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뭐가 신이 난단 말인가, 뭐가 자랑스러워서, 내가 뭐라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고 떠돌아다니는데, 그 무리를 뒤에 두고 무언가 해내고 있다는 듯 무슨 신 나는 발걸음을 옮겼단 말인가.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신물을 토해냈다. 며칠을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니던 통이라 그닥 뱉어낼 것도 없었지만 화끈거리는 얼굴은 식을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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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남은 행사들을 잘 치르고, 한국으로 돌아와 보고 느낀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었다. 내가 찍은 영상들이 KBS에 다큐멘터리로 나올 때는 신기함과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모든 순간의 마디마다 때로 웃고, 때로 신이 나기도 했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인생의 큰 전환을 맞이하기도 한다지만 나는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은 나의 삶을 살았다, 다만 기후변화로 인해 떠돌아다녀야 하는 이들에 관해 졸업 논문을 썼고, 막연하게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와 그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환경과 기후변화, 그중에서도 온 세상이 중요하게 다룬다는 ESG나 에너지는 거들떠보지 않고 소위 말하는 ‘돈 안 되는 일’을 한다며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를 나누기도 했다. 정말 조금, 내 마음 하나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세상도 그날 이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기후변화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떠돌아다니고 있다. 폭우와 가뭄, 산불은 기후변화라는 바람을 타고 예측하지 못한 형태로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 작년 여름에는 서울 강남에 이례적인 폭우가 내려 반지하에 살던 이들이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다. 누구도 그들의 사인을 기후변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우리가 주목하지 않은, 기후변화로 인한 다양한 피해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 하나의 마음은 내 삶에도, 세상에도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렇지만 때때로 그날을 떠올린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의 물결 속에 우두커니 서 있던 나와, 차드에서 온 그이가 굳은 표정으로 내게 전하던 말을,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의 경계에서 예측되지 않는 피해를 예측하며 삶의 터전을 떠나는 이들을 말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에 이렇게 적는다. 나 하나의 마음으로 되지 않는 변화를 함께 가져와 주기를 바라며 말이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가 너무나 불편하고 무거울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모르던 죽음이 만발하는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나갈 방법을 찾자고 말하고 싶었다. 차드의 소피아나, 먼 나라의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당신을 위해서.






연재 정보
연재명How to live in this world
연재 슬로건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해 생각하며
연재 소개
살아남다. 라는 말은 꽤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단순히 내 육신의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 를 생각하고 나면 살아남는다는 말이 가지는 해석의 여지는 끝없이 넓어지는 것처럼, 다양한 순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감정의 파도 속이던, 우리가 피부로 목격하는 진짜 위협 속이던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어떤 세상에 살고 계신가요
작가 정보
필명김슐
작가소개요동치는 지구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사람들을 위해 일합니다.
무엇이던 쓰고, 그보다 더 많이 지우곤 합니다.
작가의 말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하자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
추가 정보
인스타그램@sep.twenty.f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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