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자라고 있는 게 아니라 자고 있는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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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외로운 사람입니다.
[외로운 사람] 4회


생명의 방 
by 김누리



  자라고 있는 게 아니라 자고 있는 거라면
  그늘은 우퍼의 베이스가 잔여물을 남기는 것처럼 은근하게 온몸에 덕지덕지붙는다
  전기료는 내가 내지 않으니까
  CP모드로 볕의 알람을 지운다
  그럼에도 더웠던 이유는
  어두운 구석으로는 바람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늘은 원래 어둡고 서늘했던가

  암막커튼 밑으로 번진 빛줄기가 야속하여
  눈을 뜨기가 싫었고
  눈을 감기가 싫어 자고 있기로 했다

  발톱은 자라서 바닥을 찾아 뿌리내리려 하는데
  며칠 씻지 않은 몸에서 기름이 새어 나오는지
  물 밑으로 내려갈 수 없었다
  허우적대고

  과거-현재-미래 시제로 구분해보자면 오늘을 좀먹는 나만아는 그가 12시가 지나면 현재인 건지 과거인 건지 헷갈려하는 나를 녹여 먹고 있을 게다 (정정하자면 진행이다 나는 서늘하게 녹아가는 중이다)

  환기가 필요한데 아차차 주기적으로 안개를 걷질 못해서
  창문이 사라져 버렸다! (이는 의지만 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닌지라 능력 부족으로 봐야겠다)

  귀 안으로 곰팡이가 피기 좋은
  암막의 공간에서도 더듬
  더듬거리는 생명은 연장된다

  힘을 주고 눈두덩이를 크게 들어올렸다
  의도따위는 없는
  배설과 삽입의 시간이 도래했으므로
  나도 살려면 어쩔 수 없구나

  설탕을 한 줌 쥐어 입에 털어 넣는다
  손에 묻은 가루는 내일의 끈점임으로 자리잡을 터인데

  어제의 나는 사는 게 무엇인가 고민하며
  한 줌의 설탕을 머리 위로 흩뿌릴 것이다
  잎은 무성해졌다 가지를 칠 필요가 있을만큼

  그러면 균형을 잃고
  뒤집히겠다
  이왕 이리 숨막히는 거
  휠대로 휘어버린 뿌리를 드러내며
  자라나는 척 모두를 속이겠다
  나부터 속았다
  온도는 더 밑으로 낮출 수가 없다




연재 정보
연재명외로운 사람
연재 슬로건당신은 외로운 사람입니다.
연재 소개쫓기듯, 쫓느라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던 사람들은, 힘들거나 괴로운 나에 대해서 일시적으로 등을 돌립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쌓인 것들이 머리 위로 쏟아져 잠식됩니다. 그러면 갑자기 한없이 외로워집니다. '나는 왜 고독한가'에 대한 물음조차 없이 스스로를 등 돌리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글을 드립니다. 
하고 싶은 말글이라는 건 너무 어렵죠. 답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감상이 엄청 쉬워지지도 않을 겁니다. 제 글에서는 이것만 집중해봅시다. 글을 읽고, 현재 마음이 어떤지, 또 내가 그동안 모른척 했던 내 고독은 무엇인지. 내가 그때 무얼 먹었더라- 고민하는 것도 좋아요. 잠시만 마주해 봅시다. 
작가 정보
필명김누리
작가소개안녕하세요. 김누리입니다. 아직까지 작가라는 지위에 오르지 못했음에도 '주머니시'를 통해서 작가로서 글을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쓰는 글은 '아픈 글'입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개개인은 아픔이 있습니다. 아프니까 행복한 것들을 보고 싶어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결국 아픔을 마주할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아픔은 위로를 주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이기심을 통한 위안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또 아픔을 승화시켜 치유하기도, 많은 열병을 앓으며 비로소 회복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픈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작가의 말나는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이 삼켜낼 심산이다 
추가 정보
인스타그램@kkonuri
작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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