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보다 사랑에 대해 어떻게 더 잘 보여줄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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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해 생각하며
[How to live in this world] 3회


사랑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가는 법 
by 김슐





  * 이 글은 모든 구절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의 스포일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글을 보고도 영화는 충분히 재밌게 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스포일러에 예민하시다면 꼭 유의해주세요. 그리고 영화를 보고 이 글을 읽으시면 약간 더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아주 약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이하 에에올)을 드디어 봤습니다.
개봉했을 때부터 지인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제가 좋아할 것 같은 영화라고 말했지만, 결국 기나긴 게으름을 피다가 학회 가는 비행기 안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친구들의 추천대로 무척이나 재미있었습니다.영화가 받은 상이 그 영화에 관해 말해주는 것은 극히 일부라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7개나 받은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중간마다 고비가 있긴 했지만, 지금은 여러분에게 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자리까지 오게 만들었습니다. 제게는 참 감사한 영화인 셈이지요.

실은 영화를 읽고 후기를 남들에게 전하는 것은 글을 쓰면서도 잘 하지 않는 일중의 하나입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영화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시네필은 고사하고 일 년에 영화 10편도 볼까 말까 한 제가 영화에 대해 떠드는 일 자체가 너무나 죄송스럽습니다. 한때 문화가 있는 수요일마다 극장에 찾아가 최신 영화를 열심히 보던 때도 있었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영화관에 언제 갔는지 생각해보면 이제는 달력을 뒤져봐야 합니다. 그래서 이 글의 첫 삽을 뜰 때에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나 같은 게 이런 좋은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심지어 감상도 아니고 생각하는 의미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될까?'

그치만 또 안 하자니 너무 아쉬울 것 같았습니다. 간만에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고 싶은 좋은 영화를 봤는데!
그것도 이 글의 제목처럼 사랑에 대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영화를 추천해준 친구들에게 전하는 말처럼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철저하게 주관적이고 심지어는 틀린 부분도 많을 이야기가 될 테니 '그냥 저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영화보다 우리에게 더 가까이 있으니까요. 무척이나 편한 상태로 전하는 이야기임을 증명하기 위해 (?) 말을 편하게 할 테니 너무 당황하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길. 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BGM을 틀어 놓고 보도록 합시다.


오늘의 BGM은 바로 검정치마의 'Love is all' 입니다. 여기를 눌러서 들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우주의 나에게 기술을 빌려 올 수 있다면 어떤 우주에는 조금 더 글을 잘 쓰는 나도 있을 것이고, 잘하면 베스트셀러 작가나 대통령이 된 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대통령이 되고 싶은 마음은 (적어도 이 우주의 내겐) 추호도 없지만….

 

다른 우주의 나를 몸에 빌려올 수 있다는 ‘점프’라는 개념은 꽤 흥미롭게 들리지만, 한편으로는 각각 뛰어난 능력을 지닌 ‘나’를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은, 짧은 대여 시간이 지나고 나면 깊은 좌절과 괴로움으로 치환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어.

 

나는 지금까지의 짧은 일생 동안 늘 내가 뽑지 않은 카드 패를 궁금해 했고, 뽑지 않은 카드 패에 대해 후회하고 시기하는 마음과 싸워왔으니까.

 

극 중 중심이 되는 우주의 에블린이 다른 우주에 사는 에블린의 능력을 빌려올 수 있었던 건, 모든 평행우주의 에블린 중 이 우주의 에블린이 가장 불행했기 때문이었지. 그런데 그런 말을 듣는 에블린을 보고 있으면, 다른 우주 속 ‘내 힘’을 빌려올 때마다 번뇌와 질투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어.
이미 에블린의 삶에는 크고 작은 위기가 닥치고 있었는데, 눈 앞에 닥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지금 내 삶의 불행함을 반증하는 일이라니.
번뇌와 질투 정도면 다행이 아닐까? 비뚤어지지 않은 게 어디람. 

  

그래서, 실제로 번뇌와 질투에 빠져버려. (얼마나 인간적이니.)

 

그리고 영화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러한 번뇌를 따라서 흘러가기 시작하지.

 

# 태초에 사랑이 있었지

에에올에 대한 많은 후기에서 ‘1부가 정신이 사납다, 1부를 버텨야 한다, 1부가 고비다.’라는 식의 이야기가 나왔던 건 아마 1부라는 짧은 시간 동안 에블린이라는 인간의 삶과 고민, 번뇌와 그로 인한 실수들을 보여주기 위해 에블린과 그 근처 인물들의 모든 서사들을 1부 안에 담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솔직히 집중이 안되긴 하지.
처음 볼 때는 에블린의 번뇌에 나까지 함께하는 기분이었거든.

 

정신없이 쏟아낸 1부 이후로 영화는 본격적으로 괴로운 순간들을 보여주기 시작해. 그것도 동시에 말이야.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온다는 말을 기억하니?
이번 달 생활비가 아슬아슬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샴푸는 다 떨어지고, 집에 있는 휴지도 바닥을 보이고, 지긋지긋한 감기 기운이 시작되는 것처럼….
마치 아주 오래된 기계의 관절이 다시금 움직이듯, 한번 삐걱거리기 시작한 소리는 멈추지 않고, 적재적소에 부재한 사랑의 공백들을 계속해서 묘사해.
1부에서 에블린에게 찾아오던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목을 잡는데, 이 문제들을 잘 살펴보자면 하나같이 사랑했기 때문에, 여전히 사랑하기 때문에, 혹은 사랑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야.

에블린의 복잡한 심경에 가려 우리가 보지 못했을 뿐, 처음부터 영화는 사랑을 주시하고 있던 거야. 조금씩 고장 나 있는 그 사랑들을 말이야.

낡고 닳아 처음의 형태가 기억나지 않는 부부의 사랑, 녹록하지 않은 현실을 떠나려 하는 연인의 사랑, 끊임없는 갈등의 기저에 깔린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이 삶을 버티게 하지만 동시에 이 삶에 나를 갇히게 하는 일에 대한 사랑까지, 저마다의 문제로 듬성듬성 이가 나간 사랑의 잎맥을 짚어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불완전함에서 배어 나오는 슬픔이 우리에게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지. 그래서 영화 초반부터 극에 깔린 ‘평행우주’와 ‘지구를 지켜라’류의 클리셰를 한 꺼풀만 벗겨 내고 나면 이 영화엔 사랑, 그 사랑의 기쁨과 슬픔만이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야.

 

# 이가 나간 사랑은 아말감으로

 

 이가 나간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역설적으로 이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실마리는 극 중 최고의 악역인 ‘조부 투파키’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드러나게 돼. 자그마한 불행의 연쇄는 사람을 주저앉히지만,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큰 사건들은 때때로 우리에게 새로운 광경을 보게 하잖아?

 

물론 혼돈의 한 가운데에서 에블린이 쉽게 변한 건 아니야.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남편인 레이먼드에게 당신이 없는 우주의 자신이 얼마나 근사했었는지를 털어놓고, 딸 조이의 모습을 한 조부 투파키에게(실은 처음부터 모두가 조부 투파키였지만), 조이가 레즈비언이 되고 반항을 하는 게 네 탓이냐고 따지자 조부 투파키는 아직도 딸이 레즈비언인 걸 받아들이지 못한 거냐고 비웃었던 것처럼. 온갖 우주를 건너며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던 것처럼. 에블린은 그 혼란과 괴로움 속에서도 끊임없이 같은 일들로 괴로워 해.

우주가 망한데도 내 딸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더 거슬려하는 것 좀 봐.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블린은 결국 변하게 돼. 아주 조금씩 말야. 그 변화의 기저가 조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면서든, 레이먼드의 결단을 통해서든, 혹은 먼 우주의 양복을 입은 레이먼드가 자신의 비토에 건네는 말을 통해서든, 에블린이 ‘사랑’을 대하는 방식은 처음의 그것과는 눈에 띄게 달라지게 되지. 어떤 게 원인이 되었을지는 다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에블린의 변화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뭉클해.

만약에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 여기까지 글을 읽었다면, 꼭 한번 직접 봤으면 좋겠네. 이만큼이나 스포일러를 해두고 할 말은 아닐 수도 있지만.

# 그래서 결국 사랑이란

 

수 많은 평행 우주를 떠돌던 에블린과 조이가 바위가 되어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

에블린 바위가 조이 바위에게 한 걸음 다가서는 그 순간을,
조이가 모든 것을 그만하고 싶다고 말하자 덤덤하게 ‘그래’라고 말하는 에블린 바위의 모습을,
그리고 끝내 함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분명히 에블린은 처음과 달라졌는데, ‘그래서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사랑이란 뭘까?’라는 의문에 빠지게 되더라고.


이 영화에서 묘사된 사랑이란 가족마저 버리고 뛰쳐나갈 수 있는 용기이다가, 눈 앞에 있는 문제를 함께 이겨내기 위해 아등바등 쏟아내는 노력이다가, 사랑하는 이의 눈치를 보며 싫어하는 일을 피하는 마음이다가, ‘사랑하기 때문에’ 저지르는 강요이기도 하거든.

이 수많은 사랑의 편린 속에서 이 영화가 마침내 보여주고 싶은 사랑은 벼랑에 떨어지는 이를 끄집어 올리겠다고 손을 뻗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벼랑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사랑하는 이가 벼랑에서 올라오기를, 삶을 포기하지 않기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그저 함께 예견된 혼란에 몸을 맡길 수 있는 것이라고.
이보다 사랑에 대해 어떻게 더 잘 보여줄 수 있겠어.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냔 말이야!

 

 

다만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갑자기 사랑의 힘으로 싸워버리는 건 발리우드의 향기가 나면서 조금 당혹감이 앞섰지만….
사랑의 힘으로 넘어가보도록 하자. 여기서 이야기를 더 하려면 러닝타임이 200분은 되었어야 할 거야.

솔직히 말하면 여전히 웃기긴 하지만

혹자는 결국 이 영화가 갑자기 모성애를 강조하며, 자식과 부모 사이의 영속한 사랑을 운운하며 끝나버려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조이를 딸이 아니라 에브리띵 베이글 그 자체로 생각해본다면, 이 영화가 단순히 ‘부모와 자식은 떨어질 수 없어~ 사랑이야~’ 같은 이야기를 하려고 먼 길을 달려온 건 아닌 것 같아. 오히려 에블린이 되지 못했던 수많은 우주의 에블린을, 조이가 만났던 모든 우주의 조이를,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모든 우주의 당신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데에 가깝지. 역시 꿈보다 해몽인 것 같지만.


나는 짧은 일생동안 내가 뽑지 않은 카드 패를 궁금해했지만, 이젠 나도 그 카드 뭉치와 관계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삶에서도 당신들에게 내 이야기를 써서 보여주고 싶다고 말이야.

좋은 영화였어. 배우님들의 연기도 영화가 담은 메세지도.
나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줄줄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라면, 정말 좋은 영화가 맞는 거겠지. 


모든 우주의 나에게 내 부족한 사랑이 닿을 수 있기를.

베이글이 무척이나 먹고 싶네, 가능하면 에브리띵 베이글로.


소세지도! (아님)

 

# 덧

얼마 전에 양자경 배우님의 수상소감을 전달한 SBS에서 의도적으로 '여성들'이라는 문구를 지워서 내보냈다고 하더라,

멍청한 사람들.






연재 정보
연재명How to live in this world
연재 슬로건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해 생각하며
연재 소개
살아남다. 라는 말은 꽤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단순히 내 육신의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 를 생각하고 나면 살아남는다는 말이 가지는 해석의 여지는 끝없이 넓어지는 것처럼, 다양한 순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감정의 파도 속이던, 우리가 피부로 목격하는 진짜 위협 속이던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어떤 세상에 살고 계신가요
작가 정보
필명김슐
작가소개요동치는 지구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사람들을 위해 일합니다.
무엇이던 쓰고, 그보다 더 많이 지우곤 합니다.
작가의 말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하자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
추가 정보
인스타그램@sep.twenty.f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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