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우리는 주파수가 맞지 않아 서로에게 무의미한 초음파만을 뿜는 고래, 어긋난 주파수인 줄도 모르고 최선을 다해 부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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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떤 관계는 그저 우리의 섣부름만을 증명하곤 한다.
[섣부름, 미숙함] 3회


고래의 노래와 어긋난 주파수 - 2. 어긋난 주파수  
by 소연




 해무가 어깨를 짓누르는 저녁, 짙은 안개는 현실감을 손쉽게 없애 버린다. 네르하의 숙소 옆에는 바닷가로 곧장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다. 절벽에 부딪힌 파도 소리가 공명하는 독특한 바다였다. 짙은 안개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멀리서 밀려와 가까운 곳에서 부서지는 파도만은 더욱 또렷했다. 모든 것을 감각하자마자 글을 쓰고 싶어 파도가 닿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파도는 불규칙하게 밀려온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 같은 파도 소리가 되려 안전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서로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쓰기로 했다.


*


 나를 바다에 데려갔던 너의 이름이 떠오른다. 그 새벽에 겨우 소리로만 존재하던 바다가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해무의 몽롱함 속에서만 겨우 꺼낼 수 있게 된 기억들, 그럼에도 지나간 시간과 비례해 또렷해지는 기억들. 이제야 이 기억들을 꺼내 놓을 용기가 난다.

 지금 내가 너를 떠올리게 만든 그 하루, 그 겨울 바다. 너는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한 새벽에 나를 바다에 데려가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바다를 보지 못하면 당장이라도 질식할 것 같은 허상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게 너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일출 시간이 늦은 탓에 바다는 보이지도 않았다. 낮은 네 목소리와 높은 파도 소리와 폭죽이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소리가 전부였던 새벽에, 너는 양손에 폭죽을 들고 모래사장을 내달렸다. 나는 네 모습을 눈에 담았다. 천진한 너를 보면 온통 행복했다.

 네 어깨에 기대어 앉아 꿈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고래로 태어나고 싶어. 너는 편의점에서 사 온 유자차를 마시면서 길어지는 내 이야기를 끈기 있게 들어주었다. 나는 52헤르츠 고래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그 고래는 52헤르츠의 음역대를 지닌 세계 유일의 고래래. 그러니까 다른 고래들은 그 고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거지. 그런데 그 소리가 음파 탐지기에 잡혔다는 거야. 52헤르츠 고래는 외로울 것 같아. 인간에게 닿기를 바라며 부른 노래는 아닐 텐데. 다음 생에 고래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는 52헤르츠로 노래하고 싶어. 52헤르츠 고래가 듣고 나를 찾아낼 수 있을 주파수로.


 그래서 나, 얼마 전에 고래 문신을 했어.


*


 내가 기억하는 또 하루. 손잡기를 머뭇거리던 미아와 세바스찬 대신 너는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었고 나는 구 층의 영화관에서 새삼 여기가 높은 곳이었지, 생각하며 간지러운 마음을 애써 눌렀다. 눈을 맞추고 응? 하는 표정을 짓자 너는 얼른, 하고 보채는 고갯짓을 했다. 나는 주저하면서도 네가 내민 손을 잡았다. 오래지 않아 손을 놓았는데도 네 체온이 남은 손에 온 신경이 가 있었다.

 너는 연애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연애는 가장 아끼는 존재를 잃어가는 과정, 선을 넘는 순간 적색 신호가 켜지는 위험한 장난. 네가 댄 이유들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나에게 관계의 이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너를 무책임하다고 비난하기에 나는 어렸고 그 말을 하는 너의 표정은 심오해 보이기까지 했다. 네가 뿜어내는 담배 연기는 안개를 닮아 현실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닌 말들도 네 입을 거치면 금세 하나의 의미로 둔갑했다. 아, 시인의 말은 저럴까? 모두가 등단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공허한 글을 쓸 때 너는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등단하고 싶다고 단언했다. 나는 그게 좋았다. 나는 겁쟁이고 너는 용감하니까, 너랑 같이 있으면 내가 용감해질 줄 알았다. 네 글 앞에서 객관성을 잃은 지 오래여서 네가 아름다운 문장을 잉태하는 시인이 될 줄 알았다.

 예전만큼 붙어있지 않게 된 후에도 너는 자주 보고 싶다는 말을 했고 내가 생각났다며 뜬금없이 시를 보내주기도 했다. 일주일 단위로 애인이 바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웠지만, 내가 닿지 못하는 시간 동안 너는 그런 사람이 됐다고 했다. 네가 아직도 내 이야기를 쓴다는 걸 알고 있다. 너와 나를 안다면 누구라도 대상을 특정할 수 있는 글. 넌 왜 아직도 나를 쓰니, 묻고 싶다. 사실은 네가 왜 그렇게 됐는지 묻고 싶었는데 K는 너를 찾지 말라고 했다. 그저 너를 그 시절에 묻어두라고 했다.

 애매하게 마침표를 찍어버린 관계를 뒤로한 채 네가 선물했던 시집을 펼쳤다. 네가 준 책이라면 당연히 무언가 적혀 있으리라는 확신으로 앞 뒷장만 뒤적이는 나와 네가 적어 놓은 사랑이라는 단어의 간극. 사-랑- 그 단어가 씁쓸하게 입 안을 굴러다닌다. 나는 겁도 없이 틈을 내어줬고 너는 좁은 틈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재주가 있었을 뿐이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제 시인이 되겠다는 사람을 좋아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건 오로지 네 탓이다. 아, 아무래도 너를 이해하는 것보다는 오해하는 게 쉬웠다. 시를,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나약할 것 같았다. 잔뜩 가시를 세우고 살던 네가 내게만 아픔을 보여주는 게 좋았고, 내 앞에서 무너지는 너를 안고 상처를 도닥이는 시간이 좋았다. 그러니까 그때 우리는 잠들지 않아도 꿈을 꾸곤 했다.


 너는 평생 나를 소재로 쓰겠지. 네 곁에 있던 시절의 나는 온통 반짝였으니까.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원하는 것이라면 모두 얻어낼 능력도 있었으니까. 네가 동경하던 적당한 우울과 그것을 이겨낼 단단함과 끝내 꽃 피우지 못할 애매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나는 네가 죽음을 겪었을 때 굳건히 곁을 지켰고 죽음으로 걸어가던 사람을 삶으로 끌어냈으니까. 너는 내 글을 나보다 더 아꼈고 나를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내 삶의 궤적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너는 멋대로 내 삶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간다고 믿어버렸으니까.

 너는 시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감정이라고 믿으며 끊임없이 우리를 비교해 비교열위를 점하는 일에 혈안이었다. 내 삶이 너에게 닿아 열등감이 될 때면 나는 내가 노력해서 얻은 모든 것들이 미워졌다. 그렇지만 너를 위해 내가 불행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너의 것과 다른 방식의 삶도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제 보니 처참하게 실패했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마음이었다. 소중해서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곳으로 숨을 테니 너는 마음껏 너를 드러내고 살아. 많이 아프거나 끔찍하게 망가지지 않는 삶을 살아. 여전히 시인이 되고 싶다면 충분히 아름다운 삶을 살아. 언어에 누가 되지 않는 삶을 살아. 내가 기억하는 너와의 순간이 부끄럽지 않게 살아. 온몸에 열등감을 휘두르고 그 열등감으로 시를 쓰는 대신 사랑받으면서, 사랑하면서 사랑으로 시를 써.

 오빠, 사랑받으면서 살아. 네가 시를 그만 써도 좋으니 다만 행복하면 좋겠어. 그렇지만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 불행과 우연으로 글을 쓰겠지. 글에 담긴 우리를 보며 슬퍼하다가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겠지. 서로를 소모적으로 이용한다는 건 참 슬픈 일이야. 우리가 마주 보던 시절에 서로를 글에 담았던 건 귀한 경험이었지만 이렇게 글 안에서만 소비되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또 어디 있겠어? 바다 앞에서 손을 맞잡고 나란히 걸으며 온몸으로 새벽을 맞던 우리가 이런 이상한 관계가 되어버렸으니, 나는 그때의 어린 우리에게 조용한 애도를 보낼게.


*


여기는 그곳과 아주 멀리 떨어진 타국의 바다, 세 면이 높은 암벽으로 막힌 동굴과도 같은 곳. 나는 이곳에서 고래의 외로운 노래를 듣는다.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알 수 없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는 고래의 외로운 울음이 귓가를 맴돈다. 우리는 주파수가 맞지 않아 서로에게 무의미한 초음파만을 뿜는 고래, 어긋난 주파수인 줄도 모르고 최선을 다해 부르는 노래. 나는 홀로 52헤르츠의 노래를 부르며 어딘가에 닿기를 갈망하는 고래와 꼭 닮아 있다. 누구에게도 닿지 못할 외로운 울음소리다.


추신, 나는 이제야 너보다 용감해졌어. 그리고 나는 여전히 한 마리의 고래가 되는 날을 꿈꿔.






연재 정보
연재명섣부름, 미숙함
연재 슬로건가끔 어떤 계절은 그저 우리의 섣부름만을 증명하곤 한다.
연재 소개사랑해 마지않았던, 그렇지만 끝내는 섣부름과 미숙함으로 기억되는 순간을 기록합니다.
미숙함에서 비롯된 슬픔마저도 모두 나의 시간이었기에.
하고 싶은 말당신은 어떤 미숙함의 시간을 지니고 있나요?
작가 정보
필명소연
작가소개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생각들이 활자로 기록되는 순간을 사랑합니다. 
생계를 위해 사랑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기억을 사랑하고 기록을 신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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