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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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기록해온 것들에 대한 새로운 기록
[기록의 기록] 2회


2화. 기록에 대한 고찰
by 사사이안



  1. 할 줄 아는 게 글뿐이라


  현대사회는 바야흐로 비주얼(visual)의 시대이다. SNS와 동영상 플랫폼의 호황으로 우리는 직관적으로 '보이는 것'에 익숙해졌고 소비자들은 그것을 찾고 있다. 물론 '읽는 것'과 '듣는 것'의 중요성이 쇠퇴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뚜렷하게 보이는 징조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쓰는 것'에 대해 조금 다르게 생각해봐야 하나 하고 고민한 적이 있다. 요즘엔 3줄이 넘어가면 읽지도 않는다던데, 만약을 대비해서 포토샵이나 영상편집을 배워둬야 할까? 하는 고민은 꽤 자주 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먹이로 스멀스멀 떠오른다. 하지만 매번 도달하는 결론은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글뿐이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이것도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아닌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옷을 고를 때 내가 봐도 아닌 것 같은 패션센스나, 보이는 것에 관심이 없는 성격상 비주얼 적인 것은 그나마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세포 자체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 개미라서 날개가 없는데 독수리를 보고 날고 싶은 마음과 비슷하달까. 개미는 대신 땅에서 잘 사니까 땅에서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지. 그래서 결국 나는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이렇게 또 쓰고 쓴다. 이런 마음조차 다시 불안감에 잠식되지 않게 또 써서 기록해둔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이니까.


  2. 따라 쓰기, 그 은근하고 조용한

  한 때 나의 관심사는 '쓸모'였다. 특히 졸업을 앞둔 취준생이었을 때. '지금 내가 하려는 이 아르바이트가 이력서 한 줄에 도움이 될까? 지금 하는 이 취미가 내 커리어에 쓸모가 있을까?' 누구보다 여유로울 수 있었지만, 경주마처럼 달려야만 할 것 같은 마음에 내가 가진 시간과 쓸모를 최대한 손해 없이 바꾸고 싶어 하던 때였다.

  그때도 갖고 있던 나의 오랜 취미는 책 읽고 필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컴퓨터로 뭐든지 뚝딱해내는 시대에, 굳이 무거운 책과 노트와 펜을 들고 다니며 수기로 필사를 하는 것은 스스로가 봐도 아주 미련한 취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북목이 되고, 손가락에 굳은 살이 배기고, 어깨는 저릿저릿한데 나에게만 소중한 필사 노트는 누구도 알아줄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만두지 않은 건, 여기서 놓아버리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느낌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종류도 다양했다. 시를 필사한 노트 따로, 책 읽고 인상 깊었던 구절을 필사한 독서 노트 따로,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모아 둔 가사 노트 따로...(가사 노트는 지금처럼 편하게 가사를 찾을 수 없던 시대라 필요에 의한 필사이긴 했다.) 이런 것들이 뿌리 박히자 공부도 깜지를 써야만 머리에 들어오는 부작용 아닌 부작용(?)도 있었다.

  대신, 새로운 필사 방법을 고안했다. 손 글씨로 필사를 썼을 때 책과 문장의 내용이 더 잘 각인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손 글씨 필사를 고수하되, 후에 어떤 식으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컴퓨터 자료화해놓는 방법을 '추가'했다. 미련하다고 생각했던 취미를 한 번 더 번거롭게 하다니 스스로도 아이러니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현재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는 최고의 방법이 됐다.







연재 정보
연재명기록의 기록
연재 슬로건10년 넘게 기록해온 것들에 대한 새로운 기록 
연재 소개'기록 인간'으로 살아오게 된 시간들에 대하여, 결국 '쓰는 것' 까지 도달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시 씁니다.
하고 싶은 말저의 기록이 당신의 삶에 닿아 새로운 기록으로 쓰여지는 기적이 이루어진다면 좋겠습니다.
작가 정보
필명사사이안
작가소개독립출판 시집 『다시 오지 않을 밤과 바람』을 썼습니다.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고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천천히, 기쁘게, 씁니다.
추가 정보
인스타그램@sasa_ian
블로그
https://blog.naver.com/qlfn8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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