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불완전하다는 말은 꿈꿀 수 있는 여백이 남아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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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공간의 무한한 확장과 변이, 그리고 자유로움.
[내가 사랑하는 전시 공간의 공기를 소개합니다] 2회

<키키 스미스: 자유낙하>, 서울시립미술관
by 진경




  나는 일종의 경험주의자이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더라도, 감각적으로는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생각할 때가 많다. 대학원에서 실험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생긴 생각의 버릇이다. 예를 들어 비행기를 탈 때 내가 실제 피부로 경험하는 세상은 비행기를 탈 때, 실내, 비행기에서 내릴 때뿐이다. 비행기 안에서 눈을 감았다 뜨면 다른 곳에 도착해 있는데, 그 먼 공간을 이동했다는 것이 가끔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 과학기술의 시대에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지만 비행기가 동작하는 원리를 아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사실과 인지 사이의 간극에 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비슷한 생각을 신체에 대해서도 한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피부 아래 내 몸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실제로 본 적이 없다. 내가 사람의 몸에 대해 떠올리는 건 모두 간접적으로 마주했던 이미지들이다. 한동안 유명했던 ‘인체의 신비’ 전에서 방부제 처리된 신체 내부를 본 적은 있지만,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를 확인한 적은 없다. 잠깐이지만 병원에서 실제 수술 현장을 목격한다면 신체 내부를 납득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키키 스미스: 자유낙하> 전시를 보며,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을 발견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키키 스미스라는 작가에 대해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전시를 찾았다. 그곳에서 내가 마주한 키키 스미스는 인간의 몸에 대해 굉장한 관심이 있는 작가였다. 특히 해부학적 관점에서 여성의 신체를 그린 작품들이 많았다. 전시에서 신체는 여러 레이어로 해체되어 나타난다. 사실적으로 표현된 전신 조각부터 피부 아래 근육의 결을 하나하나 살린 판화 작품, 각각의 장기가 묘사된 작품이나 혀에서 항문까지의 소화기관을 벽에 걸어 전시하는 조각 작품도 있었다. 한 작품 설명 글에 따르면, ‘키키 스미스는 신체 내 장기의 생김새를 객관적인 시각 자료나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몸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한다. 작가는 스스로 응급구조사 수업을 받을 만큼 인지의 과정과 중요성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긴 시간 동안 해부학에 대한 관심을 차근차근 공유해 나갔다.

  내가 작품 혹은 전시를 감상하는 방법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조금 더 생각해보니 키키 스미스를 단순히 해부학에 대해 관심이 많은 작가라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성의 신체를 해부학적으로 표현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여성의 신체 이미지는 아주 오랜 시간 아름다운 얼굴과 표정, 이상적인 신체 비율, 백옥 같은 살결 같은 외적인 특징들로 묘사되어 왔다. 여성의 신체 이미지에 대한 심미적 집착은 현대 대중매체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신체 내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각 장기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생각해본다면, 사람과 사람은 성별이나 그 어떤 차이도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 키키 스미스는 사회적 위계를 벗겨내서 그 안을 들여다본다.

  키키 스미스가 매체나 재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특징도 이와 결이 비슷하다. 예술가에게 각각의 매체나 재료를 다루는 방법과 디테일이 다 다를 텐데, 키키 스미스는 제한 없이 폭넓은 채널들을 사용한다. 키키 스미스에게 예술은 언어이고 매체와 재료는 방법론이다. 전혀 달라 보이는 종이, 유리, 금속은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재료라는 점에서 함께 평등하다.

  전시의 다양한 작품에서 분절된 신체 이미지가 드러난다. 하지만 키키 스미스가 그리는 신체는 그저 파편화된 채로 머물지는 않는다. 유리로 된 어떤 조각 작품에서는 눈동자 두 개의 단면이 서로 말굽자석의 형태로 연결되어 있었다. <꼭두각시>라는 작품에서는 손목과 손이 서로 별개의 이미지로 그려져 있고, 그 사이를 실이 연결하고 있다. 조립과 분해가 가능한 레고를 보는 것 같았다. 가장 직관적이고 인상적인 작품은 2층에 있는 작품이었다. <무제 III(구슬과 함께 있는 뒤집힌 몸)>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몸을 반듯하게 반으로 접어 손이 바닥을 향하는 사람 형상의 조각품이다. 하나의 신체를 만들기 위해 부분별로 따로 이어 붙인 조각들의 이음새가 매끄럽게 숨겨져 있지 않고 의도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마치 완성되지 않은 작품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이 작품은 몸을 불연속적인 덩어리로 제시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사람의 몸을 하나의 연속적인 덩어리라고 말하는 건 타당할까? 작품을 보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볼 때 몸은 끊긴 부분 없이 한 덩어리이지만 피부 아래에서는 여러 부분이 모인 하나의 집합이다. 조금 더 나아가서, 만약 안경 없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들은 안경을 신체의 일부로 생각할 수도 있다. 지팡이, 의수, 의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나 인공 장기, 사이보그 신체도 마찬가지다. 피와 살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기능적으로 모여 확장된 의미의 신체를 이룬다. 하나의 고정된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정의하는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었다.

  키키 스미스의 작업은 여러 측면에서 기존의 전통적 이미지를 뒤집는다. 작품들 속 여성은 무표정으로 있거나 위협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 동화 빨간 모자에 나오는 소녀를 오히려 늑대나 괴물처럼 표현하거나,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성을 소녀로 치환해서 그려내기도 한다. 동물의 배를 가르고 나오는 여성을 조각으로 그린 작품도 있다. 이 전시에서는 볼 수 없지만 키키 스미스의 작업 중 소변, 생리혈 등 분비물이나 배설물을 표현한 작품들도 있다고 한다. 기괴하고 거북하다. 누군가의 자서전을 쓴다면 절대 쓰이지 않을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자서전에 실리지 않은 삶의 단면들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달리 보면 기존 질서에 맞고 아름다움만 추구했던 작품들보다 훨씬 삶과 밀접하다. 오히려 현실적이고 자연스럽다. 이때까지 여성의 신체에 요구되어온 심미적이고 성애적인 시선들을 전복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작품들을 보면서 사회적, 개인적으로 가져온 고정관념들과 삶의 생략된 순간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키키 스미스는 전시을 통해 사람들이 신체 내/외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다. 그리고 자신이 '자유낙하'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것을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읽었다. 우리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불완전하다. 누구나 아픔을 느끼고, 노화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수 없고,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하지만 불완전함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시작과 끝이 있기에 소중함을 느끼고,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감정과 시선이 존재한다. 중요한 건 이미 정해져 있는 것들이 아니라 그 안에서 우리가 낚아내는 의미들이다. 중력이나 엔트로피 등 기본 물리 법칙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성립한다. 자유낙하를 하는 물체는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반대로 수많은 힘들 중 중력만이 작용하는 단순한 운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안에서 물체는 뉴턴의 사과처럼 수직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달이 지구를 도는 궤도 운동을 할 수도 있다. 삶이 자유낙하의 과정이라면 그 속에 어떤 궤적을 그릴 것인지는 인간의 자유다.

  그래서 불완전해도 괜찮다, 그리고 어쩌면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랑스럽다. 키키 스미스를 통해 한편으로는 내가 가진 경험주의자적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내가 작품이나 전시를 직접 보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도 직접 보아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작품 앞에 서서 관찰하고 고민하며 경험으로 획득한 생각들은 쉽게 휘발되지 않는다. 그리고 당장 기승전결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비슷하고 또 다른 경험을 통해서 생각의 뼈대에 살이 붙고 근육이 붙는다. 그리고 살아가는 내내 계속해서 생각의 덩어리들을 해체하고 또 조립한다. 전시의 작품들이 말해준 것처럼, 표면이 반질반질하고 매끄러울 정도로 잘 다듬어진 생각들이 아니어도 좋다. 그리고 때로는 그렇지 않아서 좋다. 어떻게 보면 불완전하다는 말은 꿈꿀 수 있는 여백이 남아있다는 말이다. 수많은 다양한 형태로 발화될 수 있는 상태들이 중첩되어 있는 것. 내가 생각의 과정을, 전시를, 예술을, 인간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연재 정보
연재명내가 사랑하는 전시 공간의 공기를 소개합니다
연재 슬로건생각하는 공간의 무한한 확장과 변이, 그리고 자유로움.
연재 소개작품에서 파생되는 생각은 어디든지 도달할 수 있고 무엇이든 틀리지 않았다. 내가 전시에 빠져드는 경로를 기록하고 공유하기. 
하고 싶은 말
작가 정보
필명진경
작가소개검은색과 흰색 사이 줄다리기를 좋아합니다. 경계에 살며 경계 없는 세상을 그립니다. 가끔 획으로 생긴 틈으로 굴러 떨어지기도 합니다. 
작가의 말0과 1 사이 수많은 숫자들 
추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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