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빨래를 넌다는 소식을 들으면 맑은 날인 게 저절로 알아차려지듯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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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고 지칭해온 이들 모두 어렵지만 아름다웠어요. 제가 해주고 싶었던 말입니다.
[너는 어렵지만 아름다워] 2회


생활과 날씨 그리고 짐작이 있어요 
by 시훈




  고양이를 씻기고
  나무 의자의 나사를 조이고
  토스트에 버터를 발라 먹었어

  전화 너머로 내 말을 듣고 있던
  친구는 추측을 시작한다

  바깥에서 보면 오피스텔 창문으로
  햇빛이 비치고 있을 것 같아

  어떻게 알았어
  넌 타지에 사는 데다가
  내가 날씨를 말한 것도 아닌데

  햇빛이 반사되어
  창틀에 고여있는 걸 보며 나는 놀란다

  생각보다 앞서서 생활 하나하나에 이미 스며든 날씨라는 게 있지
  빨래를 넌다는 소식을 들으면
  맑은 날인 게 저절로 알아차려지듯 말이야

  친구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가계부를 쓰고
  화분에 물을 줄 거고
  고양이는 잠들 것 같아
  이건 어때

  사랑은 알면 알수록 잘 모르겠는 과목 같달까

  그게 뭐야
  낄낄거리며 우리는 전화를 끝낸다

  정확하게 원리를 설명하지 않아도
  대략적인 느낌이 삶에 있으니까
  수다로도 채워지는 의욕

  매번 날씨가 맑을 수는 없지만
  우연의 빈도가 높아지면 필연처럼 여겨진다

  은연중에 사랑이 있는 이유도 그래서

  이제 뭘 할까
  밤에는 날씨가 어떨까
  들을 음악을 미리 생각한다

  이제 예보도 할 수 있다
  몸과 기분 구석구석까지
  날씨의 징조가 스미고 있다

  창가에 서서 손바닥을 들어 본다
  날씨가 만져지는 것 같다





연재 정보
연재명너는 어렵지만 아름다워
연재 슬로건때론 나 자신을 "너"라고 부르기도 하며 쓴 시들.
그리고 "너"라고 지칭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을 생각하며 쓴 시들.
연재 소개"너"라고 지칭해온 이들 모두 어렵지만 아름다웠어요. 제가 해주고 싶었던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벌써 오늘이네요. 더 만나요.
작가 정보
필명시훈
작가소개시간 다 되었어요! 모아온 시를 지금 드릴게요.
작가의 말시집 "나를 오래오래 켜두었다"를 독립출판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추가 정보
인스타그램@writer_see_hoon
블로그
kimjh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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