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아니, 그냥 케이크면 케이크고, 입에 들어가면 다 소화되고 맛보면 다 똑같은데, 무슨 먹는 방법이 다 따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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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디저트] 2회


크레이프 케이크
by 무구




  그거 기억나? 비가 오고 습도가 높아서 뭘 해도 다 짜증스러운 날이었어. 곧 면접인데 밥은 체할 것 같고 그냥 커피나 마셔야겠다고 카페에 들어갔었잖아.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만 부탁하고 테이블에 엎어져 있었는데, 진동벨이 울리자 네가 후다닥 음료를 가지러 가겠다며 일어났어. 굳이 너의 수고로운 호의를 거절할 필요는 없으니깐. 나는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네가 나 몰래 케이크를 하나 시켰었잖아. 크레이프 케이크, 같이 먹자고.


  나는 속이 안 좋다고 방금 말해놓고선 대뜸 케이크는 좋다고 먹기가 사실 좀 그랬어. 그래도 너의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으니깐, 포크를 들어서 케이크 모서리를 쿡 찔러 먹으려고 했는데, 황급히 나를 제지했잖아. 그렇게 먹는 거 아니라구. 아니, 그냥 케이크면 케이크고, 입에 들어가면 다 소화되고 맛보면 다 똑같은데, 무슨 먹는 방법이 다 따로 있어?

  그래도 너는 좀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며 포크 가장자리, 단이 살짝 나 있는 뾰족한 부분을 이용해 케이크 제일 윗면에 살짝 찔러 넣었어. 그리고 뱅글뱅글 포크를 말아 돌렸지. 크림이 안 예쁘게 떨어져 나와서 남아있는 케이크 잔해가 보기 흉했지만, 너는 그렇게 한 겹씩 떼어먹는 게 맛있게 먹는 법이라고 했어. 그리고 나더러 그렇게 해보라고. 나는 못 이기는 척, 너를 따라서 해보려고 했는데, 힘 조절을 잘 못해서인지 조금 시트가 찢어졌었어. 그래도 맛있었지. 보드랍고 달콤한 시트와 생크림이 입 안에서 녹듯이 사라졌어. 거기에 따뜻한 커피까지 마시니까 아주 좋던데. 밖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종아리엔 빗물이 묻어 찝찝하고, 일기 예보를 체크하지 못해서 미처 갈아 신지 못했던 운동화는 습기 차서 눅눅해졌더라도 말이야.


  그날, 면접은 어땠는지 잘 기억은 안 나. 결국 그 학교는 떨어지고 나는 다른 학교에 붙었거든. 그 뒤로 너는 어떻게 된 거야? 연락을 안 한 지 너무 오래 지났잖아. 나는 크레이프 케이크만 보면 네가 생각나는데. 단면을 푹푹 잘라먹어도 그럼 안 된다고 막아줄 너는 없는데. 학교에는 붙은 거야? 아니면 다 때려 치고 그만둔 거야? 아님 그냥 내가 보기 싫은 건가?


  나는 이제 크레이프 케이크를 우아하게, 포크의 한 쪽을 유연하게 이용해서 돌돌 말아낼 수 있어. 한 번에 부드러운 케이크 시트를 입에 넣고, 따뜻한 커피를 바로 마셔. 자칫 느끼해질 뻔했던 맛을 커피가 깔끔하게 잡아주거든.

  비가 오는 날이면 망했던 그 면접 날이 생각나. 면접보다 그전에 긴장을 풀어줬던 따뜻한 커피와 크레이프 케이크, 그리고 너.





연재 정보
연재명디저트
연재 슬로건달콤 쌉싸름한
연재 소개밥보다 디저트를 더 좋아합니다. 근데 가끔은 내가 정말 이 맛을 좋아하는지 아님 이 음식에 얽힌 분위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진짜 제 이야기인지 아님 만들어낸 이야기인지는 크게 상관없어요. 때론 맛보다 다른게 더 중요한 순간이 있듯이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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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무구
작가소개작가이자 예술가, 창작자로 오래오래 살아남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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