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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인 모두에게 남기는 편지
[여섯 다리 법칙] 1회


1화 🦋 [한 마리, 광연] 
by #F0F8FF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1년 동안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였던 사람이 있다. 부엌 창문에서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사는 이웃 주민. 한번은 창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벗은 뒷모습에 놀라 그대로 다시 닫았던 적도 있을 만큼, 다른 건물인데도 너무 가까워 민망하기까지 한 거리에 살고 있다. 그가 가장 즐겨듣는 음악은 비틀즈의 헤이 주드. 저녁 7시면 들려오는 노래에 익숙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건 어느덧 일과의 하나가 되었다. 또 2주에 한 번은 꼭 삼겹살을 구워 먹더라. 냄새에 홀려 나도 덩달아 삼겹살을 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는 매일 아침 6시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가끔 과제 때문에 밤새 깨어 있다가 어두운 방 안에 옆집의 빛이 살풋 들면, 그때서야 6시가 되었다는 걸 자각하곤 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매일 열심히 사는 듯한 모습을 보면 갑작스럽게 위로받는 기분이 들곤 했다. 언젠가는 꼭 이름도 물어보고 인사도 하고 지내는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백 번도 넘게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이웃사촌이란 단어는 이제 너무 빛바랜 단어이지 않나.

  결국 나는 그가 죽을 때까지도 이름을 알지 못했다.

 

 분명 아침에 창문 너머를 봤을 때, 이웃집 창문 안으로 바닥에 가지런히 놓인 두 발을 봤었다. 밤늦게 자기 직전까지도 그대로인 것을 보고,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112를 누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쯤 정신을 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서서히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경찰도 알려주지 않던 그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쉽게 알게 되었다. 익명 커뮤니티 덕분이었다. 에프킬라를 물고 있었단다. 입 안, 식도에 박아넣고 에프킬라를 쐈다고 했다. 수면제도 다량 먹었고, 술도 마셨단다. 신고자인 나도 알 수 없던 이야기들을 다들 어디에서 듣고 알아낸 건지, 종일 대학 익명 커뮤니티가 뜨거웠다.

  

익명 : 걔 에프킬라 빚이 많아서 그랬다는데? 

 돈이 없어서 머리도 비었나 봄

    ㄴ익명 1: 넌 그게 죽은 사람한테 할 소리냐?

      ㄴ익명 2: ㄱㄴㄲ 진짜 노답이다

  

익명 : 나 죽은 애 친구인데

ㅈㅂ 이런 얘기 좀 그만하자. 역겹다 진짜.

    ㄴ익명 1: 증거 ㄱ

      ㄴ익명 2: 사람이 죽었다는데 증거 타령 하고 싶을까

     ㄴ익명 1: ㅋㅋ 응 앞에선 한마디도 못 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던 중 눈길을 잡아끄는 제목의 글이 하나 올라왔다.

 

 익명: 안녕하세요, ‘에프킬라’라고 불리는 고인의 가족입니다.

 많은 분들이 제 동생의 죽음에 대해 궁금해하고 계신다는 걸 지인에게 들어 알게 되었습니다. 제발 무분별한 추측이나 비하는 그만둬 주세요. 저희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일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 동생의 죽음을 가십으로 즐기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짧은 글이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엔 충분했다. 1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라붙어 글의 진위 여부를 판단했다. 대부분의 댓글은 글쓴이에게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그 와중에 어떤 댓글은 증거를 요구했다. 당신이 가족이라는 것에 대한 증명을 내놓지 않으면 우리가 그 말을 믿을 이유는 없다. 열몇 개의 댓글이 우리가 되어 본문을 공격했다. 다행히, 이제는 에프킬라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두자는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뒤로도 간간이 관련된 내용이 올라오기는 했지만 대부분 무시당했다.

  잠잠해지는 커뮤니티와는 다르게, 내 마음은 한껏 소란스러운 채로 멈춰있었다. 사건 당일 이후로 한참을 자지 못했다. 해가 뜰 때까지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아침 6시를 넘기는데도 환해지지 않는 옆집 창문이 원망스러웠다.

 

 대체 그는 왜 죽었을까? 

 

-

 

2주 정도 지난 뒤, 슬슬 다시 사건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익명 : 그래서 에프킬라 

왜 죽은 거래?

    ㄴ익명 1: 다들 먹금해 너 진짜 예의 없다

        ㄴ익명 2: 근데 솔직히 다들 궁금하잖아

 

맞다. 궁금하긴 했다. 솔직히 에프킬라를 입에 물고 죽었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잘 알던 사람이지 않나.

 솔직히 아는 사람이라기엔 애매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름도 모르는데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그냥 옆집 사람이지. 그래도 명색이 신고자인데. 아는 척 좀 해도 되지 않을까?

 

익명 : 에프킬라 신고한 거 난데

 신고하고 찝찝해서 물어봄. 어디 과인지 누구인지 아는 사람 있어?

  ㄴ익명 1: ㅋㅋㅋ 관종이냐?

 

그럼 그렇지. 여기에 정상적인 반응을 기대한 내가 문제였다. 댓글이 더 달리기 전에 빠르게 게시물을 지웠다. 괜히 관심을 더 끌어모으고 싶진 않다. 궁금하지만, 뭐 꼭 알아야 하는 일도 아니니 여기서 그냥 묻어도 상관없긴 했다. 비록 내가 인사라도 한번 건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심심치 않게 들곤 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니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정말 어쩔 수 없었을까? 사실 생각해보면 기회는 몇 번이나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죽음을 막을 수 있던 기회가. 곰곰히 생각하다 보니 이상한 점이 떠오른다. 신고하기 한 달쯤 전이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는데, 펄떡이며 춤을 추는 실루엣이 보였다. 춤, 이라기엔 뭐랄까.. 굿? 마치 굿을 하는 듯한 실루엣이긴 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집에서 혼자 굿을 할 이유는 없으니, 당연히 춤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도 되게 이상한 춤을 추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에프킬라를 물고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움직임은.. 마치 벌레를 쫓아내려는 움직임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다. 지금 부엌 창문을 열면, 그 아이의 영혼이 창문을 넘어 들어오진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본다. 내게 원한을 갖고 있으면 어쩌지. 왜 말려주지 않았냐고 귀신이 따지면…. 내가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해야 하는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시험이고 과제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계속 SNS의 새로 고침만 반복한다. 너무 자주 반복해 이제는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오지도 않는다.

 

30분쯤 그러고 있었을까. 드디어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왔다.

 

세빈아, 거기서는 잘 지내고 있니..?

 

모르는 사람의 게시물이었다. 아마 수환이가 ‘슬퍼요’를 눌러 내게 보인 듯했다. 보아하니 세빈이라는 사람이 죽은 모양이다. 순간 내 기민한 감이 움직였다.

 

세빈이라는 사람, 옆집 사람인 게 분명하다.

 

“그렇게 죽을 줄 몰랐다”, “신경 써주지 못해 미안하다”, “갑자기 갔다”는 등의 댓글을 보았을 때, 확실하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없다. 이건 분명 내가 그 아이의 원한을 알아내야 한다는 증거다. 나에게는 왜 그 아이가 죽었는지 알 권리가 있다. 옆집이고, 신고자이고, 어쩌면.. 어쩌면 방관자이기도 하니까. 

주저 없이 친구목록에서 수환을 찾아본다.

 

  “어, 수환아! 시간 괜찮아? 물어볼 게 있는데, 너네 과에…”


[다음에 계속] 






연재 정보
연재명여섯 다리 법칙
연재 슬로건엑스트라인 모두에게 남기는 편지
연재 소개우리는 얼마나 가깝고도 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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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건물 남자가 에프킬라를 입에 물고 죽었단다. 이유가 뭔지 궁금하지만, 알 방법이 없었다.
친구가 옆 건물 남자와 같은 과 동기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여섯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라고? 대학가에선 4명이면 충분하다.

각기 다른 네 개의 시선을 통해, 가깝고도 먼 그의 죽음에 다가간다.
하고 싶은 말누군가의 인생에서 엑스트라였던 A의 삶, 배경이었던 B의 삶, 소품이었던 C의 삶을 위하여 !
작가 정보
필명#F0F8FF
작가소개쓰고 그리고 찍으며 삽니다. 
작가의 말뛰어들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추가 정보
인스타그램@alice_lives_in_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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