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652

다시 걸음마
[집순이의 방 탈출] 1회


인어가 되기 전에
by 백유주




  나는 n년 차 집순이다. 집순이라는 말은 사실 꽤 미화된 표현이고 실상은 은둔형 외톨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 미워하고 감추며 방에 콕 박혀 지내왔다. 사람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었고, 친구들은 내가 어디로 증발한 것인지 영문조차 알지 못했다. 모두에게 족쇄를 채웠던 팬데믹이 나에게는 오히려 좋은 핑계였다. 아주 긴 시간 동안 마스크 속에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나를 잊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숨어 지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정말 나를 잊으면 어떡할까 걱정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주변으로부터 외면받는 꿈을 꾸기도 했으니까. 정말 오랜만에 오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이 올 때까지 내심 두렵기도 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무소식에도 정도가 있는 법. 나의 모교를 찾아가 뒷조사를 해볼까 아니면 탐정이라도 고용해야 하나 별 상상을 다 하며 도대체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라도 확인하고 싶은 지경이었다는 친구의 탄식. 나는 내심 안도하면서도 내가 참 지독하고 생각했다. 친구에게 고마웠다. 소중한 친구가 나 때문에 불법을 저지르기 전에 연락해서 다행이었다.

  용기를 내기로 했지만 사실 지금 이렇게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 키보드 위 손가락들이 자꾸 머뭇거리고 망설인다.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나약해진 뇌의 신호를 받고 자꾸 움찔거린다.
‘백스페이스 누르자. 모두 다 지워버리고 당장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가자. 이 발가벗은 느낌 못 견디겠어. 심지어 지금은 한겨울인데!’
자꾸 또 숨고 싶다. 여전히 내가 밉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방 탈출을 감행할 때다. 한참 멈추어 있던 녹슨 시계태엽을 돌리고, 무덤이라도 만들 기세로 땅만 파던 손으로 문고리를 돌리고, 문밖에 돌아가는 세상으로 눈을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돌리자.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면 가끔 숨을 참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마치 방 안에서 잠수 중인 것처럼. 의식적으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지만 금세 또 호흡이 얕아져 버린다. 심해 속에 오래 잠겨있다가 아가미가 생겨나고 두 다리가 지느러미가 되면 어떡하지? 이러다 사랑에 빠질 왕자님도 마녀의 고약한 마법도 없이 제풀에 목소리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물거품처럼 느껴지는 지난 시간. 웅크린 몸을 한 번에 꼿꼿이 일으킬 수는 없더라도 하다못해 구르기라도 하자고, 뽀송뽀송하게 뭍을 활보하진 못하더라도 수면 위로 얼굴이라도 내밀어보자고, 나는 내 옆구리를 쿡 쿡 찌르는 중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이미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단물 쏙 뺀 명언이 속을 쓰리게 만들지만, 결석보다는 지각이 낫다는 합리화로 발걸음을 다독여본다.

  비록 물에 젖은 생쥐 꼴에 올가미 같은 미역들이 몸과 마음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지만.

  뽀글뽀글 (여러분, 저 살아 있어요!)

  뻐끔뻐끔 (아무도 없는 거 아니겠지?)




연재 정보
연재명집순이의 방 탈출
연재 슬로건다시 걸음마
연재 소개지독한 집순이가 도돌이표를 탈출하고자 꺼내든 작은 용기입니다.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바깥을 흘깃거리는 모습을 지켜봐 주세요.
하고 싶은 말말을 걸어볼게요. 같이 걸어볼까요?
작가 정보
필명백유주
작가소개지구본 모양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아요. 몇 번의 세계 일주로 튼튼한 목발이 되죠. 목발을 짚고 두리번두리번 세상을 짚어보고 있어요.
작가의 말이불을 개면 날이 갤지도 몰라요.
추가 정보
인스타그램@iooyz

 


아래 버튼은 후원 버튼으로,
운영비를 제외한 모든 후원금*은

웹진에 참여하신 작가분들께 전달됩니다.


 

*후원금 기준액은 1,000원입니다.



1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