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3] 누구나 그럴 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만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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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시가 주머니시가 되기까지 주머니시 제조 1편



  주머니시 도서 기획부터 제조까지 나름 본격적인 이야기! 주머니시를 개발하는데 저는 만 1년 반이 걸렸다고 말합니다. 고작 박스 안에 카드를 넣는 것이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요? 오늘 전하는 주머니시 개발하는 과정의 이야기는 매우 구체적이면서 여태껏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내용도 있을 거예요. 부끄러워 말하기 싫었던 내용들이거든요.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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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머니 속 시집, 주머니시라는 명칭은 이 아이디어의 본래 명칭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제품라인 중 하나가 된 "시거랫"이 본래 명칭이었는데요. 문학 장르의 시와 담배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시거랫의 합성어로 언어유희를 했었죠. 

  본래 명칭이 담배를 의미하는 시거랫이었던 만큼 구성도 실제 담배에 더 가깝게 고민했습니다. 지금 주머니시의 내부 구성은 카드를 담은 것이지만, 원래는 담배처럼 종이를 돌돌 말아 넣을 생각이었거든요. 실제로 최초의 시제품은 종이를 돌돌 말아 넣은 형태였고요. 제가 주머니시를 소개할 때 자주 '컨셉에 미친 시집입니다' 라고 우스갯소리 하기도 하고, 종종 주머니시를 보시고는 진짜 담배처럼 종이가 말려 들어가 있으면 더 재밌겠다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실은 다 거쳐왔습니다. 그 광기의 시간을 말예요. 

  브랜드 슬로건* 역시 그랬습니다. 시거랫, 그러니까 주머니시의 첫 브랜드 슬로건은 "스무 개의 우주를 펴내다" 였어요. '담배를 피다'와 '책을 펴다'를 어떻게든 엮어서 말하고 싶었거든요. 그만큼 담배처럼 표현하는데 진심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기획을 완료하고는 학교 친구들, 후배들의 글을 모아 최초의 시제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럴듯하게 만들어 사진도 찍고, “나 이제 시거랫 한다!” 고 선언하는 게시물도 써서 올렸습니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지만 신이 났습니다. 되려 빨리 만들어보고 싶어 안절부절 했던 때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때마침 학교 창업지원센터에서는 학교 행사에서, 내빈께 드릴 수 있는 제품 50부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느냐 제안해주셨는데요. 당근 입죠! 하고 신나게 시거랫 시제품 만들기에 돌입했더랬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기획과 실물의 차이를 여실히 느끼게 돼요. 


  🔸패키지 지기구조 및 접착 문제 

  지기구조란 종이의 꺾임, 접힘, 뒤집힘 등을 고려해서 기획된 종이의 구조도를 말하는데요. 지금의 주머니시 패키지를 뜯어 펼치면 대략의 구조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한 바퀴를 쭉 돌아 한 면 접착으로 마무리되는 구조 그것이 지금의 주머니시이지요. 하지만 그 의뢰를 받은 시점에 제가 가진 지기구조도는 수준 이하였습니다. 제가 만들었거든요. 종이접기나 박스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단순히 접착만을 생각하고 구조를 짜니 아랫면, 윗면, 옆면, 거의 모든 면에 접착제를 붙여야 하는 비효율적인 구조였습니다. 또 접착면 모두 외부에 노출될 뿐더러 한 면만 풀이 덜 붙어도 모양이 쉽게 망가졌는데요. 그래도 꼼꼼하면 나름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돌돌 말아붙인 내지 위로 고양이가 걸어다닙니다

  더 큰 문제는 내지였습니다. 담배처럼 종이를 돌돌 말기 위해서는 까다롭고 많은 조건이 따랐는데요. 사이즈가 꼭 맞는 동그란 쇠막대기가 필요했고요. 직사각형의 내지를 정교하고, 일관되게 일자로 말아야 했고요. 잘 말아 끝 부분에는 붙였다 뗄 수 있는 풀(;재접착풀**)도 필요했습니다. 

  제품에 꼭 들어갈 20장을 말아 붙이는데 20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학교 행사의 일정도 촉박해서 동네 친구 두 명에게 도움을 요청해 꼬박 밤을 새야 했죠. 다행히 기한에 맞춰 물건은 전달했지만, 성취감도 잠시 좌절감이 넘치는 경험이었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꼭 두 가지는 바꾸어야겠다 다짐했어요. 하나는 패키지는 주문 제작할 것, 다른 하나는 종이를 마는 기기를 개발할 것. 그렇게 쓰고 나서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둘을 바꾸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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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며 글을 쓰게 되니 자연스레 제 과거를 추억하게 되는데요. 몹시 행복했네요. 다음에 쓸 내용 역시 그렇습니다. 줌시 운영자의 천방지축 제작비 충당 모험기… 크밍 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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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문장 또는 구절. **초록색 딱풀과 동일한 회사에서 제작된 파란색 딱풀. 포스트잍 같은 성질을 갖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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