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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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시의 탄생 배경-아이디어 도출 과정 편



  아뇨. 없었습니다. 주머니시의 발칙한 형태와 형식에 칭찬하시는 분들께 감사하면서도 부끄러움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제가 가진 재능이나 고민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얻어걸렸어요. 속된 말로 운빨입니다. 오늘 전할 이야기는 주머니시 탄생 배경 중에서도 아이디어 도출 과정에 관한 내용인데요. 그 과정이 터무니 없어 끄덕이면서도 갸우뚱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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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해지겠다는 새 마음을 훈련소에서 챙겨 나온 후, 제 자신에 대해 적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유명해지려거든 내가 가진 것이 중요한데, 나는 나를 설명할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나는 누구인지, 잘하는 것은 무엇이며 하고 싶은 것, 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정리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광고를 공부했습니다. 흔히 아는 영상광고가 아닌, 하나의 메시지—나이키의 Just do it과 같은—를 만들기 위해 질문하는 학문이었는데요. 철학적인 데가 있어 좋아했습니다. 이 학문의 다른 매력이라 한다면 예술처럼 창조가 가능하단 점이었는데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듯이,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기획하는 법을 배웠죠.

  좋아하는 것은 잘하기 마련이잖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저는 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게 도움이든, 물건이든, 상관없이 기뻐하는 사람이었는데요. 저를 소개할 요량으로 “줄 것만 생각합니다”라는 문장을 쓰기도 했거든요. (이후에 선물남**이라는 콘텐츠도 했던,,,)

  그렇게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나열했습니다. 그리고 겹쳐 보았습니다. 그렇게 나온 결론은 사회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공공캠페인을 하면 딱이겠거니 했습니다. 깔쌈하고, 쌈뽕하고, 깔끼하게. 이게 무슨 도출 배경이야 하겠지만,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저 유명해지고자 했던 뒤틀린 욕망이 사회를 돕는 방향으로 흘러버린 것이죠.


  그즈음 학교에 남아있던 친구들—여자사람친구들—은 나름의 고충을 겪고 있었습니다. 졸업이 다가오는데 이룬 것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다며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렸거든요. 그 불안감은 꽤 길었고요. 저는 친구에게 응원이 되었으면 해서 쪽지를 전했습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쓴 시와 함께요.

  안타깝게도 그때 쪽지를 받았던 친구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쓴 시가 많이 느끼했을 지도 모를 일이죠. 그런데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재밌고 기뻤거든요. 전하고 난 후의 경험이 아니라, 전하기 전에 기뻐할 친구를 상상하며 쓰는 일이 말예요. 주기 전이 가장 설레는 편지처럼.

  그 경험 이후에 저는 컴퓨터에 ‘펼치는 시’라는 파일을 만들어 저장해 두었습니다. 아무런 내용도 없이 제목만 달아서요. 이후 어찌할 진 몰라서 방치해 두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마침 그 해에 펼치는 시를 살릴 사건이 발생하게 돼요.


  2014년에는 담뱃값이 오르는 일이 있었어요. 2500원에서 4500원으로. 무려 2배에 가까운 금액으로 올라 원성이 자자했는데요. 공공캠페인에 목마름을 갖고 있던 제게 금연이라는 매력적인 목적이 온 것이죠. 그 수단으로는 몇 달 전 컴퓨터에 저장해 둔 ‘펼치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담뱃갑 안에 담배 대신 무언가 넣을 수 있다면, 그래서 응원을 전한다면 그것이 시가 되어도 좋겠다고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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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글을 쓰면서 이게 맞나, 주머니시 탄생의 부실한 배경을 부실한 글로 전하는 게 맞나 고민했는데요. 이런 솔직함마저 제가 가진 무기니까, 꾸밈 없이 전해봐요. 이것이 주머니시의 시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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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에서 아버지인 기택이 아들인 기우에게 하는 말.
**선물하는 타인이라는 의미의 선물남. 2019년 4월부터 3회 진행 후 종료되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아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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