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1] 당신처럼 한 번 아름다워보자고 시작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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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시의 탄생 배경-의지 편


  이전 글에서 제 안에 있는 마음, 진심을 이야기 하겠다고 말씀 드렸었는데요. 그건 제가 갖거나 겪은, 어두운 이야기도—듣기에 거북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말씀 드리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오늘 전할 이야기는 주머니시 탄생 배경 중에서도 의지에 관한 내용인데요. 제 삶의 목적을 가장 많이 고민했던 시기인 만큼 밝기가 가장 낮은 이야기가 될 테지만, 그렇다고 몹시 부담스러운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여러분은 그 결말을 알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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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에게는 영장이 날아오지 않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어떻게 알았냐고요. 저도 알고 싶지 않았거든요.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치르게 되는 병역 의무. 저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듯이 때가 되면 영장이 집으로 날아드는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대학에 재학 중인 경우에는 입소를 직접 신청해야 하더라고요. 그걸 알게 됐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라,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군입대를 하는 친구들과 다르게 저는 3학년 1학기까지 아주 느지막히 다녀야 했습니다. (물론 대체복무**지만요.) 

  그 덕분에 저는 매우 독립적인 시기를 보냈습니다. 말이 독립적이지, 깊은 대화를 나누어 왔던 평생의 친구들이 군복무를 하고 있어 무척 외로운 시기를 보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쓸쓸해 대화 상대를 찾던 나머지, 제가 저와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아가 우주에서 나라는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까지 물었지요. 

  지금이야 그 질문을 쉽게 넘길 수 있지만, 그 시기의 제겐 방어수단 이랄 게 없어, 하루가 멀다 하고 제 쓸모를 찾았습니다. 우주에 있어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쓸모없는지 깨닫게 되는 나날의 연속이었는데요. 우주에서 아주아주 작은 먼지. 저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울증 초기의 신호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 상황을 벗어나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훈련소였습니다. 학기가 끝나자마자 입소했던 육군 훈련소에서는 제가 생활하는 모든 것을 통제 받게 되었는데요. 나쁘기 보다 되려 제게 규칙적인 식생활과 건강한 수면을 가져다 주었고, 극복 의지도 함께 주었습니다. 제 쓸모에 반하여, 내가 우주의 아주 작은 먼지라면 정말 큰 먼지가 되어보겠다는 의지 말예요. 

  제가 정말 큰 먼지가 되는 방법으로 꼽은 것은 유명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요. 언젠가 지구인이 외계 생물과 교류하게 되었을 때, 지구의 역사에 제 이름이 등장했으면 해서요. 영화 제 5원소***에서 나오는 이소룡처럼.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희망사항인데도 실로 저를 구한 목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좋아하는 일 보다 잘하는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그 이야기에 매우 동감하는데요. 그럼에도 괜히 반박하고 싶어지는 건, 주머니시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살려고—존재 이유를 찾으려고—한 일이기 때문이에요. 어느 한 시인의 말처럼. 나도 당신처럼 한 번 아름다워보자고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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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시인의 말」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中) 
**주머니시 대표는 사회복무요원으로 2014년 6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약 2년 간, 안산 본오초등학교에서 학습지원 목적으로 복무하였습니다.
***브루스 윌리스, 밀라 요보비치 주연의 액션 영화. 주연 밀라 요보비치는 외계인으로, 지구의 역사를 배우는 과정에서 이소룡의 자료를 보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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