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이렇게 둘뿐이었으므로 모여 앉아도 원을 그릴 수 없었다

김혜원

<낭독의 밤> 김혜원


낭독의 밤에는 낭독을 했다. 우리는 여럿처럼 모여 앉아서 불을 지폈다. 낭독의 밤은 캄캄해야 하고 캄캄함을 비춰줄 빛이 있어야 하니까. 너와 나 이렇게 둘뿐이었으므로 모여 앉아도 원을 그릴 수 없었다. 너는 나를 소리 내서 읽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를 소리 내서 읽어줄 필요성이 있었다. 나는 너를 소리 내서 읽었다. 낭독의 밤이 깊어졌다. 왜 모여 앉아서 초를 들고 있으면 눈물을 흘리게 될까. 우리는 조금씩 울었다. 너와 나는 등을 대고 있었다. 왜 마주 보지 않고 등을 대고 앉지. 마주 보고 앉으면 가슴이 뛸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손을 더럽히면서 초를 흙에 묻었다. 새벽이 와서 더 이상 캄캄함을 비춰줄 빛이 다 사그라졌을 때 너는 나의 의자가 되어주었다. 나는 너의 의자가 되었다. 우리는 가슴이 뛸까 봐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등을 대고 있었지. 등이 약간 배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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