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말선, 「열매들」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中)

봄놀다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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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희가 얼마만한 크기인지 모르는 상태로 벌려보는 다섯 손가락


 너의 손은 다섯 가닥 복사꽃처럼 복숭아를 낳을지도 모르는 꽃잎을 흉내 낸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쁨은 서로 펼쳐지려는 방향으로 향기를 떨어뜨린다 손톱처럼 더 가려는 성질을 부리면서


 다섯 장의 꽃잎은 집중하고 확산하고 흩어지기에 수월하게 몰입하는 장소를 열어준다


 열매는 자 이것을 가져라 하고 말하며 매달려 있다


 맨 끝에 매달려 있다는 것은 맨 먼저 맛보는 너의 눈동자를 주머니에 넣어서 반죽할 수 있다는 것


 너는 얼른 손을 빼는 습관이 있지만 만날 때마다 이것이 방금 수확한 것이라는 듯 미지근한 손을 내밀어 주었다


 공손하게 관절을 오그려 복숭아의 목을 비트는 동작으로 열매가 열매에게 대하는 수만 번의 기시감이 이런 것일까


 어떤 무대에서는 칼과 흰 비둘기와 만국기를 낳고도 손은 열매인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더 높이 추락하려면


 가볍거나 무겁게 흔들리고 무의식을 쥐고 있다


 도움닫기 멀리뛰기를 하는 것들은 물방울의 자세로 회귀하는 중


 열매의 주인이라 나서는 자는 열매의 무의식을 따며 죄의식을 느낄수록 무용하다


 세상의 모든 열매는 환희로 벅차오른 층계에서 간당거리는 진담


 한 번에 껍질을 벗겨서 운을 점치는 토템과 망치로 부수자마자 웃음이 폭발하는 블랙 유머와 두 입술을 열어서 서로의 침을 나누어 가지는


 이것은 복숭아일까 코코넛일까 라고 물으며 네 손은 수만 번째 수확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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