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 소연

<미신> 소연


너랑 있으면 손에 자꾸 이유 모를 생채기가 나곤 했다. 나는 붉은 실이 엮인 상대가 근처에 있으면 손에 생채기가 난다는 미신을 떠올렸다.

아, 운명을 믿으면 삶이 근사해진다.

가끔 나는 우리가 애인이 되지 않았다면 어떤 날들을 보내고 있을까 생각한다.
그랬다면 네 손에 생긴 생채기들을 마음껏 쓰다듬어주지 못했겠지. 너를 안고 쿵쿵 기분 좋은 심장 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겠지. 네가 내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쓸어내려주는 일도 없었 겠지. 보고 싶다는 말을 할 때면 대뜸 내 앞에 나타나는 너도 없었겠지.

네가 미래의 어느 순간에 사라진다 해도 내게 사랑의 형태는 너를 닮아 있을 게 분명하다. 졸리면 쌍꺼풀이 짙게 지는 눈으로, 왼쪽 뺨의 작은 흉터로, 유난히 긴 네 번째 손가락으로, 네가 나를 응시하는 시선의 온도로, 나른한 오후의 햇빛 아래에서 서툴게 춤을 추던 시간들로.

아, 잔인하고 황홀한 운명이다.





이 작품은 주머니시 시집 시리즈에 수록된 시입니다.
컵홀더의 QR코드는 24개의 시 중에서 무작위로 하나를 보여줍니다.
[목록] 버튼을 통해 컵홀더에 있는 작품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주머니시 시집 시리즈는 한양대학교 에리카 창업동아리, 주머니시에서 만든 시리즈로 작품 공모를 통해 시집에 포함될 작품을 선정 중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